친정 가업이어 70년이 눈앞군민들 사랑방 역할도 ‘톡톡’
지리산함양시장내 상가번영회가 운영하는 쉼터 ‘다방’ 맞은편에 여느 점포와 다를 바 없는 낯익은 포목점이 있다.
송신숙(67)씨가 운영하는 송일상회이다. 송일상회는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던 포목점을 송씨가 이어받아 지리산함양시장에서는 가장 오래된 포목점 중 하나로 명맥을 잇고 있다. 송씨가 부모님의 가게를 물려받은 지는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올해로 18년째다. 부모님이 50 평생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일구어 온 점포다.
송일상회는 이곳에서만 벌써 40년이 됐다. 함양전통시장이 40년전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싸전(쌀가게가 모여 잇던 곳) 인근에 있던 점포를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 지리산함양시장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점포를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도 송씨의 친정 부모님은 28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싸전 인근에서 포목점을 운영했었다.
송씨는 2남4녀의 둘째딸로 구장터 인근에서 태어난 함양읍 토박이다. 여동생 한명과 남동생 한명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고 다른 남매들도 다른 도시에 살고 있거나 포목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송씨가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송일상회를 이어받은 건 18년전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다.
그녀는 평소에도 부모님이 바쁠 때는 가끔 일손을 도와드렸기에 포목점 일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게다가 눈썰미에 손재주까지 있어 취급 품목이 다양한 포목점이라 할지라도 엉겁결에 넘겨받은 포목점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익은 많이 줄었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운영하고 있다.
송씨는 “30~40년 전까지만 해도 함양군내는 물론이고 산청, 인월에서도 포목을 사기 위해 찾아 왔었다”며 “그때는 함양시장이 정말 큰 시장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쇼핑이나 TV홈쇼핑 등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한복과 이불 등의 수요도 줄어들어 자기 소유의 점포가 아니면 운영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 됐다”며 전통시장 상인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녀는 “보기보다 포목점 일이 쉽지 않다”면서 “장사도 예전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안 되지만 놀기삼아 문을 연다”고 했다.
“부모님이 포목점을 했을 때만 해도 혼수품으로 이불 몇 채는 필수였고 신랑신부는 물론 가족들까지 혼례 한복을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면서 “그때만 해도 하루 천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게 사셨던 분인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자식들 결혼식도 가족끼리 단출하게 하고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도 부고를 하지 못하도록 가르쳤다”며 “부모님이 바르게 사셨기 때문에 주위 분들이 지금도 자신을 많이 챙겨준다”고 했다. “같은 포목점을 하면서도 자기 가게에 물건이 없으면 우리 점포로 손님을 보내주기도 한다”며 부모님이 그동안 정직하게 사셨던 덕이라고 했다.
송일상회는 점포 3개를 하나로 사용하는 12평 남짓한 크기지만 없는 게 없다. 주품목인 한복지를 비롯한 다양한 옷감과 이불, 베개 등 침구류, 생활한복, 수건, 수의, 삼배, 인견 등 취급품목도 수십 가지다.
송일상회는 손님이 옷감을 골라 한복을 주문하면 치수를 재 바느질 잘하기로 소문난 거래처에 제작을 의뢰해 한복을 짓는다. 송씨는 “좋은 옷감을 고르는 것은 자신에게 맞는 색상과 천을 고르는 것이고 옷감 보다 중요한 건 바느질이다”며 “옷은 바느질이 생명이다”고 강조했다.
송씨는 오전 8시30분 문을 열어 오후 7시쯤 문을 닫는다. 15일과 30일 월 2회는 쉬는 날이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날도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
지리산함양시장의 터줏대감격인 송일상회는 친정 부모님 때부터 수십년을 이어온 노포(老鋪)로 단골손님도 적지 않아 그나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굳이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가다가도 잠시 들러 안부를 묻고 쉬었다 가는 군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송씨는 “팔기도 하고 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용돈하고 남을 만큼은 번다”면서 “몸만 건강하면 산다”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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