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국내·외 고서적을 구해 한약 공부를 한다. 그의 손을 거쳐 한약을 지어간 환자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함양군 최장수 한약방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청호당한약방 이승남(83)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원장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현업에 종사하면서 청호당한약방을 찾는 사람들의 체질과 증상에 맞는 최상의 한약을 조제하기 위해 학구열을 불태운다.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 한의학 서적들을 탐독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이 원장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현재 청호당한약방 자리인 함양읍 용평중앙길(목화예식장 뒷길)에서 한약재 도매업을 시작해 한약과의 인연을 맺었다. 한약재 도매업을 하면서 한약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더욱 커졌다.
이 원장은 현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공부한 끝에 한약방을 개업할 수 있는 ‘한약업사자격’을 취득했다. 약업사 자격을 취득한 이 원장은 1983년 동문네거리에 청호당한약방을 열었다. 단순히 약재를 판매하던 것에서 벗어나 한약을 조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청호당한약방은 동문네거리에서 4년 동안 영업하다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식 한약방을 연 것은 올해로 36년째지만 한약재 도매업을 한 것까지 더하면 55년 세월을 함양군민들과 함께해 왔다. 함양군 내 한의원과 한약방, 약재상의 산 역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위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원장은 사실 함양 토박이는 아니다. 이 원장은 만주에서 태어난 재외동포 2세대다. 부모님이 만주로 이주해 살았던 탓에 그곳에서 태어났다. 이 원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 모두가 고국으로 돌아와 산청군 생초면에서 잠시 살다 함양에 정착했다.
이 원장은 맨손으로 이룬 천호당한약방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하지만 한약방은 일반 사업체와 달리 양도양수 할 수 없다.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가업으로 물려 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한약업사자격 제도도 1980년대 중반 이후 폐지돼 한약업사자격을 취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원장은 중학생인 손자들에게 기대를 건다. “손자들이 아직은 어리지만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한의사가 되면 한약방이 아니라 천호당한의원으로 제 뒤를 이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청호당한약방은 3년 전부터 막내아들인 위곤(47)씨와 며느리 황정례(43)씨 부부가 이 원장을 돕고 있다. 이원장은 위곤씨의 아들인 손자들이 청호당한약방의 가업을 물려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랫동안 약재 도매상을 한 이 원장은 다양한 약재를 비치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약재는 웬만한 한약방이나 한의원의 두 배는 될 것이다”며 “효능이 뛰어난 약을 지을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귀띔한다. 창고 가득한 다양한 약재들만큼이나 청호당한약방에는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는단다. 심지어 호주나 일본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 올 정도라고 하니 글로벌 한약방인 셈이다.
이승남 원장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이라고 조언한다. 이 원장이 손수 지었다는 청호당(淸祜堂)이라는 한약방 이름도 ”맑은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살라는 뜻을 담은 것”이라며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원장은 배려와 베풂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왔다. 각종 봉사단체의 장을 맡아 일해 왔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한약을 무료로 지어준 것도 부지기수다.
이 원장은 “지역에 해(害)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원로로서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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