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저를 ‘지리산빨갱이’라고해요. 하하.” 온가족이 지리산의 넉넉한 품에 안긴지 6년째를 맞는 최희정(45) 민화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함양군 유림면 회동마을에서 최희정 작가를 만났다. ‘빨갱이’는 귀촌 후 지리산에 박혀 은둔생활을 한다고 지인들이 붙여준 애칭이란다. 민화(民畫)는 실용을 목적으로 산수와 꽃, 새 등의 정통 회화를 모방해 무명 화가들이 그렸던 그림이다. 가장 ‘돈 안 되는 미술장르’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그녀다. 도시생활을 할 때는 자신도 미술학원을 10년 넘게 운영 했지만 두 딸에게는 그 흔한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들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게 하고 싶다”고 한다.그녀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민화의 색감에 매료돼 20년 넘게 민화에 빠져 산다. 최희정 작가는 6년전 부산에서 함양군 유림면 손곡마을로 온가족이 귀촌해 2년 동안 살다 이곳 회동마을로 이주했다. 남편 김형진(45)씨는 대학 1학년 때 선배 소개로 만난 캠퍼스커플. 오랜 연애 끝에 서른이 돼서야 결혼했다. 큰딸 재민(16)은 수동중학교에, 작은딸 민하(13)는 유림초등학교에 다닌다. 함양생활을 시작한 첫해 감나무밭을 빌려 감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부산 토박이인 부부에게는 1000평의 감농사도 결코 녹록치 않았다. 초보 부부 농사꾼은 한여름 뙤약볕에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수확기를 앞두고 감나무가 병해를 입어 주먹만큼 자란 감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수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땐 너무 속상해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났다”고 했다.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그후 이들 부부는 텃밭정도만 농사를 짓고 각자의 재능을 살려 주민들과 소통하며 더 큰 보람을 일궈가고 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회동마을행복샘터에서도, 유림초등학교 운동장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모두가 최 작가가 재능을 기부한 작품들이다. 회동마을행복샘터에는 샘터 준공을 기념해 마을 주민 57명의 초상을 팝아트로 단장했다. 그녀의 작품은 행복샘터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엽서 3~5장 크기인 3~5호 사이즈로 주민들의 다양한 표정이 최 작가의 손끝에서 살아났다. 3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또 유림초등학교 운동장 백보드 뒷면을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동심 가득한 벽화를 선물하기도 했다. 최 작가는 유림초등학교와 마천초등학교의 방과후 강사로 학생들에게 창의미술을 가르친다. 이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나누고자하는 마음에서다. “자연과 함께 자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작품이 도시 아이들과 확연한 다름을 느낀다”는 최 작가는 자연이 주는 여러 혜택을 늘 고맙게 여긴다. 귀농 후 큰딸의 아토피 증상이 사라진 것도 그중 하나다. “함양이 엄청 먼 곳인 줄 알았다”는 최 작가는 “부산에서 2시간 거리이고 대구·광주 등 대도시도 가깝다. 가끔 전시회나 작품활동 때문에 서울에 다녀올 일도 있는데 교통이 편리해 서울 가는 것도 편하다”며 “함양으로 귀농·귀촌하라고 지인들에게 적극 권한다”고 했다. 최 작가는 2016년 민화협회 주최 미술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17년 국전에서는 특선으로 선정되는 등 수차례 수상경력을 가진 공인받은 실력파다. 그녀는 올 가을쯤 개인전을 열어 군민들과 지인, 함양을 찾는 관광객 등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민화를 그린지도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공부하는 단계라고 겸손해하는 그녀는 모사본이 아닌 자신만의 민화를 그리는 게 꿈이다. 그의 꿈이 유림면 회동마을에서 영글어 가고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