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아궁이 군불 때는 집이 대부분인 산골마을에는 집집마다 땔감이 가득하다. 남자가 있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도 어떻게 장만하셨는지 땔감이 가득하다. 마치 땔감으로 거대한 장작옹성을 쌓아 겨울 추위를 물리칠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거대한 성벽위로 머리를 내밀고 “어이~ 동장군~ 어디 한번 쳐들어 와 봐바~ 이 땔감이 무섭지도 않나?”하고는 흐뭇한 미소들을 짓는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가을걷이하면서 틈틈히 땔감을 주워 모으는데, 게으른 농부인 나는 남들 땀 흘릴 때 탱자탱자 놀다가 추위가 닥치자 급한 나머지 전화로 장작 주문을 했다. 땔감은 보통 5톤 트럭으로 한차에 얼마씩 판매하는데 이렇게 5톤 트럭으로 구입해서 엔진톱으로 토막내고 도끼로 쪼개면 좀 저렴하기는 하다만 요즘 곶감일로 허리가 부실한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쪼개놓은 장작을 주문했다. 바로 땔 수 있도록 다 장만 해놓은 땔감 판매 단위는 루베라고 한다. 재작년에 3루베 샀는데 벽난로에만 때는 거라 2년은 썼다. 올해는 2루베 주문했다. 1루베 시세가 18만원이니 농부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우리 집은 커다란 베란다 창으로 한겨울에도 해가 거실 끝까지 들어와 낮에는 난방을 안 해도 되지만, 해가 일찍 떨어지는 산골이라 해 넘어가면 벽난로를 때고 잘 때는 심야전기 보일러를 잠깐 돌린다. 십수년 전에 싸다고 설치한 심야전기가 요즘은 얼마나 비싼지 전기요금이 겁이 나서 온수매트도 같이 쓰고 있다. 한 때는 나도 이산 저산에 땔감하러 부지런히 다녔다. 지게에 땔감을 져 나르기도 했고 트럭 뒤에 간벌목을 주워다가 부지런히 날랐다. 집에 땔감이 가득하면 빌딩이라도 장만한 듯 뿌듯해하며 욕심껏 주워왔다. 주워온 나무는 하나씩 엔진톱으로 토막내고 도끼로 쪼개었는데, 이제 게으름이 난 나는 곶감 일하느라 허리가 시원찮다는 핑계로 사서 쓰고 있다. 내가 땔감을 사서 쓴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땔감장수도 먹고 살아야한다. 곶감 일이 한창인 요즘 일이 끝나면 저녁 먹고 벽난로에 장작을 넣는다. 잘 말려진 참나무 장작을 때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토막내고 쪼개놓은 것이라 불 피우기도 쉽다. 땔감을 직접 해서 쓸 때에는 덜 마른 나무도 많아서 처음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과연 돈이 좋기는 좋다. 불쏘시개 몇 개만 붙여놓으면 마른 나무라 금방 옮겨 붙으니까. 이제는 이상 기후로 곶감 만드는 일이 예전처럼 만만치 않다. 온난화에 대비해야 하고 또 겨울철 미세먼지에도 대비해야한다. 올해부터는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을 만들기 때문에 일이 두 배로 세 배로 힘들지만, 내가 하는 일이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고 이 먹거리는 내 가족 형제 그리고 이웃이 먹는 거라 힘들기는 하지만 한번 도전해보는 거다. 그렇다고 이것이 농부가 땔감을 사서 쓰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실 농부가 땔감을 사서 쓴다는 것은 고백컨데 부끄러운 일이다. 어쨌든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벽난로 앞에 앉으면 잘 마른 장작이 탁탁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르니 하루가 평화롭고 이 시간에는 마누라 잔소리도 모짜르트 소나타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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