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체가 화목해야 만사가 조화롭다. 피아노 연주자의 두 손은 합심하여 사이좋게 건반을 두드리고, 첼로 연주자의 두 손은 역할을 나누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오른손과 왼손이 화목하지 못하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오늘 전지가위로 곶감 꼭지를 잘라내던 중에 오른손이 왼 손가락을 하나 베었다. 별안간 벌어진 일이었고 이른바 묻지마 테러였다. 평소에는 이것들이 사이가 좋았다. 무거운 박스를 들 때나 가벼운 접시 하나 들 때도 둘은 서로 손을 맞잡고 도왔는데 오른 손이 갑자기 무슨 심통이 난 거지?사실 오른손이 궂은 일 도맡아 하니 힘든 것은 사실이다. 호미질도 오른손이 하고, 낫질도 오른손이 한다. 가위질도 오른손이 하고, 톱질도 도맡아 한다. 오른 손은 손목이 붓도록 고생하는데 왼손은 허리춤에서 놀고 주머니 속에서 게으름 피운다. 심지어는 똥 닦는 궂은일도 오른 손에게만 맡긴다. 그래서 심통이 난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왼 손 가운데 손가락이 피를 흘리자 나는 빨간약을 발라 주고 밴드도 붙여 주고 난 뒤, 손들에게 하루 휴식을 줄테니 싸우지들 말라고 싸우나에 데리고 갔다.뜨끈뜨끈한 욕탕에 담그니 허리도 좋아하고 두 손 두 발도 좋아라 하고 치질로 고생하는 똥꼬도 행복해한다. 나는 밴드 붙인 왼손 가운데 손가락과 입만 남기고 모두 담궜다. 다들 좋아라하고 행복하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내가 욕하는 걸로 오해할까봐 신경이 쓰인다.2. 아내가 손가락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2만원 송금할 걸 20만원 보내버렸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정신 나간 손가락이 영을 하나 더 눌러 버렸다 한다. 나도 최근에 9만원 어치 곶감 주문한 고객이 90만원을 입금했길래 81만원을 되돌려 준 적이 있다. 웃기는 건 당연히 돌려주는 건데도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피 같은 돈을 송금 하다보면 손가락이 떨리는 법이다. 아내는 유니세프 후원금 2만원 보내다가 실수로 20만원을 찍어 버렸다는데, 이를 어째~이를 어째~ 하는걸 보고 내가 바람직한 실수네~마음은 열배야~하고 놀려 먹었다. 아내는 그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한 뒤 정기 후원 자동이체 등록을 했다. 지금은 정기후원금이 월 3만원이지만 그때는 2만원이었다.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실수를 해서 자기가 한 일을 남편이 알게 했고, 이런 종류의 미소는 또 전염성이 강한 법이라 나도 몇 년 전부터 곶감 팔아 유니세프에 보내고 있다. 3만원짜리 곶감 한 봉다리 팔면 어린이 영양실조 치료우유 한 개 값이다. 처음엔 열 봉다리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마음이 열배로 커졌다. 하지만 마음만 열 배고 목표만 열 배일 뿐 스무 개든 서른 개든 내가 할 수 있는 실수는 한계가 있다.오늘 22봉다리 보냈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데, 굳이 사랑의 열매를 다는 것은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알면 더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작은 바램 때문이다. 나는 왼 손이고 아내는 오른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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