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 로이터 사진전(2016. 6.25-9.25.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은 세계의 수많은 드라마를 기록하여 우리들 앞에 펼쳤다. 모두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된 사진 앞에서 관객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바라 봄’의 자세를 취했다. 사진과 관객과의 거리는 가까웠으나 관객들이 어떤 해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명대로 읽을 것인지 “자명한 것이라 불리는 어떤 것 속에는 이데올로기적 남용이 감추어져있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사진 너머의 암묵적인 의미를 유추하며 읽을 것인지. 특히 다미르 사골의 ‘북한’은 수만가지의 생각을 하게 했다. 사진은 전언message이다. 로이터통신 보도사진기자 다미르 사골은 공정성과 정확성의 사진철학을 강조하며 “보도사진은 관심을 촉발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잔인함과 행복함과 불공정함을 시각적으로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다미르 사골의 ‘북한’은 불행한 기운이 감도는 건물의 모든 창에 불이 꺼져있음에 반하여 김일성 사진에만 밝은 불이 들어와 과도한 개인숭배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사진이다. 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두운 침묵 속에 음산하게 기립한 건물에서 홀로 빛나는 인물사진은 조지 오웰의 「1984」의 한 문장 “빅 브라더가 주시하고 있다”를 떠올리게 했다. 사진을 보는 관객은 단순히 건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너머의 많은 것들을 생각할 것이다. 불빛이라고는 없는 북한의 정체성과 정치적 현실과 개인숭배와 억압된 생활을 떠올리며 창이 열릴 것 같지 않은 건물들이 의미하는 바를 유추하게 되는 것이다. 2016년 11월 대한민국은 한 장의 특종 사진에 분노했다. 창 너머의 주객이 전도된 듯한 사진은 일반인의 상식을 한 순간에 뒤집었다. 언론은 ‘오만’과 ‘뒤바뀐 입장’을 보여주는 듯한 포즈를 날카롭게 보도하고 이들의 태도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현 시국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거나 본분을 잃을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은 언어가 생략되어 있으며 사고思考를 의미화한다. 한 장의 사진으로 사람들은 표현되지 않은 응축된 모든 것을 보는 셈”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은 이 시점에서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2016년 11월 7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긴 렌즈로 찍은 창문 너머의 특종사진은 그들만의 ‘관계’를, 어떤 ‘조직문화’를 응축하여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 반향이 매우 컸다. 사진은 시각적으로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의미심장한 전언이다. 2016년 11월 12일과 19일 밤의 사진들이 인터넷 뉴스에 속속 등장했다. 촛불들의 거대한 행렬과 광장의 운집과 그들의 외침이, 거리를 지키는 꽃벽의 사진이 연속적으로 도배되고 방패를 든 청춘들과 시민들의 촛불이 비폭력으로 대치하는 성숙한 모습의 사진도 올라 왔다. 언어든 영상이든 기록은 사명이다. 한 장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펜은 한 시대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으며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보여준다. 너무도 환했던 그날 밤의 불빛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불명예란 무엇인가를 목도하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생각한다. 한 장의 사진이 보여준 전언은 뼈아픈 가르침이 되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11월, 수능도 끝나고 가을걷이도 마무리되어가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월동준비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12월을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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