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면 장자동에 오래 전부터 고반재(考槃齋)를 짓고 계시다는 종림 스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올해 초에는 무작정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았던 적도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안의면의 고반재에 종림 스님이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오는 12월3일 책 박물관 고반재 개관식을 앞두고 고서들을 정리하고 계신 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직접 뵌 것은 처음이지만 온화한 미소와 조금은 어눌한 것 같은 말씀까지, 상상하던 큰 스님의 포스보다는 친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에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안의면이 고향인 종림 스님. “고향이 오히려 부담스럽지. 잃었던 옛날 서열이 나타나잖아.” 고등학교까지 안의에서 졸업한 스님의 서열은 종단 내에서는 몰라도 일흔이 조금 넘은 연세에 고향 함양에서의 서열은 그렇게 높지는 않으리라. 종림 스님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68년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한 후 72년 해인사에서 지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도서관장을 역임했으며 92년 고려대장경연구소를 설립했다. “특별하게 출가한 계기나 이유는 없어. 기본 성향, 사회 적응도 잘 못하고 히히. 공부도 인도철학을 했고. 자연스럽게 간 것이지 특별한 계기는 없어. 주변에서도 다 그렇게 될 줄 알았어. 크하하” 함양 사투리와 함께 천진한 웃음소리가 아주 해맑고 깨끗했다. 그런 웃음과 함께 온화한 미소는 더욱 일품이다. “사회생활을 안 해보고, 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해서 그래. 서울에서 공부하다 절에 들어갔으니. 세상에 시달리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어” 마음까지 따듯하게 해주는 미소를 너무 평가절하했다.
종림스님은 지난 20여년 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직을 맡아 대장경 연구에 몰두했다. 팔만대장경을 포함한 고려대장경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대장경의 총목록을 작성하고 해제 작업을 마무리해 학계에 내놓기도 했다. “대장경은 기독교의 성경과 같은 존재야. 부처님 말씀인 경· 율·논 3개를 대장경에 담았어. 불교 경전이 총집대성 되어 있는 총서가 바로 대장경이야. 원래 불교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대장경을 공부하게 돼. 해인사 장경각에 들어가봤어? 들거가보면 느낌이 달라 숙연해지고.” 오랫동안 대장경에 대한 스님을 말씀을 이어졌다. 우리나라 대장경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티벳과 몽골 등의 대장경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학승으로 불리는 종림 스님.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있고 설렁설렁 하는 것이 있다. (내가 하는 공부는)머리 싸매고 하는 것이 아니지. 따로 공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종림 스님은 예전 만화책을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 “만화책은 지금은 안 봐. 예전 대장경연구소가 이태원에 있을 때 만화방을 저녁마다 갔었지. 얼토당토않은 사람이 만화방에 온기라. 한 달 정도 가다보니 물어 보길래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니 공짜로 봤어ㅎㅎ. 머리 많이 쓰는 사람이 쉬는 것이었지.” 스님은 천년을 이어온 대장경의 디지털화 작업의 고됨을 만화책이라는 재미를 통해 해소했다.
스님이 20여년간 연구한 재료들이 모두 고반재(考槃齋)로 옮겨진다. 스님은 고반재의 의미에 대해 “시경의 ‘군자가 고반재간에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하는 구에서 따온 것이다. 작은 골짜기에 초막하나 지어놓고 악기를 치면서 노래하는 군자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고반재, 그 정도면 괜찮다 생각했다.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고반재는 1층 책 박물관과 2층의 스님이 머무시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박물관에는 스님이 대장경 전산화사업을 추진하면서 모은 중국 왕조들이 편찬한 대장경과 몽골과 티벳 등의 대장경을 비롯해 불교 경전과 철학 서적들로 이미 빼곡하게 채워졌다. “예전 연구소하면서 자료 수집을 많이 했었어. 고반재가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
고반재 뒤쪽 사찰을 담은 건물은 ‘천년지장(千年之藏)’이다. 말 그대로 천년의 보물을 보관한 장소인 천년지장에는 천 년 전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이 봉안되어 있다. 초조대장경은 일본으로 반출된 초조대장경의 인본을 복원한 2040권이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엄청난 보물 초조대장경이 고반재에 모셔졌다.
스님이 머무시는 고반재는 천혜의 땅 장자동에 위치했다. “그냥 좋아하는 나무나 심고 쉬려고 했는데. 이곳은 완전히 숨은 동네 ‘천옥’이야. 바깥에서도 안 보이고 그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 고반재에서 많은 이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을 벌였으면 하는 것이 종림 스님의 바람이다. 고반재를 찾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푸근한 종림 스님의 미소가 전해질 것이다.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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