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살살 아파 아침 굶고 점심 건너뛰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아 배 아픈데 효험이 있다는 매실 한잔 마시고 버티다가 안되겠다 싶어 주사나 한방 맞으려고 병원에 갔었네요. 진찰하고 주사 한방 맞고 약 받아 집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집에 못가고 있습니다. 맹장염이라네요. 바로 수술을 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배를 맡겨 버렸습니다. 읍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한다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냥 하게 되었습니다. 맹장 수술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니 잠깐 하고 집에 갈 생각만 했었지요. 근데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 해도 배를 째고 창자를 잘라내는 일이라 금방 집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네요. 엿새째 입원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습니다. 내일 퇴원 예정인데 병원에서 나오는 밥이 점점 맛이 없어지는 게 몸이 회복되어가는 징조가 아닌가합니다. 입원실은 4인실입니다. 벽에 시계하나 달력하나 걸려있는데 이 달력이 좀 웃깁니다. 입원실이라면 예쁜 꽃 사진이나 명화 달력이 걸려 있어야 마땅할 텐데 여기 달력은 날짜만 큼직하게 있는 12간지 달력으로 아래 광고란에는 이런 글이 보입니다. <가족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모모병원 장례식장 24시간 대기...우짜고 저쩌고...> 4인실의 네 침상은 공교롭게도 50대(나), 60대, 70대, 80대 환자가 나이 순, 시계바늘 방향으로 침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치 10년이라는 시차로 내 몸이 이렇게 변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70대(실제 79살)인 영감님은 방귀소리가 얼마나 큰지 정말 부럽습니다. 부끄럼을 달관한 나이인지라 불을 끈 밤에도 입원실 벽이 뚫리도록 포를 쏘아대는데 건강의 화신인 것 같습니다. 한밤중 화장실에 자주 간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십니다. 수술 후 방귀가 나와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기에 나도 수술부위를 자극하지 않고 방귀를 뀌기 위해 무지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이틀 후 힘 조절에 성공하여 나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저질의 가스누출이 있었는데... 사람 사는 게 참 우습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지...건너 침상의 60대 아저씨는 신체의 어느 부위가 특별히 아파서 입원 하신 게 아니고 그냥 쉬고 싶어서 오셨다고 합니다. 근데 쉬러 왔는데 정작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도로 집으로 가서 잡니다. 무슨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도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싶어 숨을 죽이고 집중해 보았더니 난방 팬 소리인지, 가습기 소리인지 모를 저음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는데 그게 어쨌다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아저씨는 50년간 이발을 해온 이발사라고 합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바로 이발 기술을 배웠다는데 항상 면도칼을 사용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외모도 신경질을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날카로운 인상입니다. 집에서 자고 정확하게 아침 6시 반이면 신문을 들고 입원실로 들어오십니다. 신문에 끼인 전단지까지 꼼꼼하게 읽어보고 가끔 이런저런 문의 전화도 하시고... 아저씨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불평을 합니다. 왜 병원에서 환자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소음을 없애주지 않느냐? 다른 사람은 잘 자는데 왜 혼자 못자느냐고 하면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냐... 이발소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도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유감입니다. <군수님도 내가 고개 숙이라고 하면 바로 숙이는데...> 80대 영감님은 어제 퇴원을 하셨습니다. 매일 링거 주입하고 흰 약 4개만 준다고 무슨 병원이 이래 성의가 없느냐고 잘 치료해줄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퇴원하셨습니다. 주사나 한방 맞으러 갔다가 졸지에 수술을 하고 퇴원이 늦어지니 심심해서 수다를 좀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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