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불거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사건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앞으로도 메가톤급의 보도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이런 일들이 주술적인 사교(邪敎)와 관련이 깊다는 인상을 주고 있어서 점점 그 실체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국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같이 해라! 같은 사랑을 품어라! 뜻을 합해라! 한 마음을 품어라!’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가 되고, 우리 국민들이 하나가 되면 무슨 일을 해도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서로 서로 칭찬하고, 서로 먼저 인사하고, 서로 서로 미소 짓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가? 필자가 잘 알고 지내는 목사님 중에 10여 년 동안 ‘미.인.대.칭’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계시는 목사님이 있다. 미인대칭 운동은 미소 짓고,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칭찬하자는 운동이다. 여기에 ‘감.사.나’ 세 가지를 덧붙여서 감사하고 사랑하고 나누는 일을 실천하자는 운동을 권장하고 싶다. 성경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동네 이장이나 지자체단체의 장만 되어도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굳이 교만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들에겐 우쭐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매우 크다.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겠는가? 그런 사랑을 입은 우리가 누구에게 큰 소리를 치고 누구 앞에서 잘난 체를 하며 폼을 잡을 수 있겠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나 물욕(物慾)을 버리라는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겸손하게 살다가 가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면 어떤 경우에라도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모든 것을 다 채우고 살려고 하니까 사는 것이 피곤하고 짜증이 나고 만족이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이라는 것이 본래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약간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 오히려 매력이 있다는 말을 한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 때도 완벽한 남자는 오히려 숨이 막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더 좋다고 한다. 그래야 배우자가 도와주고 채워주면서 살게 된다는 얘기다. 그와 관련해서 ‘서푼앓이’라는 말이 있다. 한푼 두푼 서푼 할 때 ‘서푼’과 ‘앓는다’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도 그렇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그렇고, 나라를 이끄는 것도 그렇고, 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아이들도 뭐든지 해달라는 대로 100% 다 해주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오히려 모자란 듯이 기른 아이는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스스로 잘 개척해 나가는 걸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대견하다고 말한다. 대견하다는 말이 한자 표기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대(大), 어깨 견(肩)으로 표기하면 어떨까 싶다. 소심해서 어깨를 움츠리고 사는 청년들이 많은 요즘, 어깨를 쫙 펴고 사는 대견한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 젊은이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흥청망청 지원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푼앓이 교육’, ‘서푼앓이 살림’, ‘서푼앓이 정치’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몸까지 다 내어 줄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서푼 정도는, 약 30% 정도는 부족하게 살면서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며 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밥을 먹어도 70%만 먹어서 30%정도는 위를 비워두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욕심을 버리면 좁았던 집이 넓어 보일 것이다. 기대를 내려놓으면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예뻐 보일 것이다. 마음을 조금만 비우면 얇은 지갑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질 텐데, 서둘러서 난로 설치도 하고 펠렛 연료도 구입해야겠다. 그러나 올 겨울은 난방도 서푼앓이로 해 보면 어떨까? 뭔가 좀 부족할 때 매력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깊어가는 올가을엔 서푼짜리 목사로 살고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