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서학). 시천주라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면 만복이 들어올 것이다(동학). 이심이 말했다. 내맥이 금강산으로 옮겨가 태백산과 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이씨 왕조가 망하고 정씨(鄭氏)왕조가 팔백년 도읍할 땅이다(정감록). 석가모니 법력을 이어 인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오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인간 세계에 오는 순간 현세의 모든 번뇌와 고통은 벗어나느니(미륵불) 모심니다. 만 성수님들. 지극정성이면 감천이라. 나쁜 기운은 물러가고 좋은 기운은 들어오고 명 받고 복 받아라(무속신앙). 어디보자, 임신년 용띠라,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 이 달은 화재수가 있으니 불을 조심하라(사주팔자). 난세지영웅(亂世之英雄).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 말 18세기에는 난세에 온갖 말들이 떠돌았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말했는지 알 수 없는 말만 남아 사람의 입과 입을 타고 떠돌았다. 일반 백성들 속에서 서학, 동학, 도참설, 정감록, 미륵신앙, 무속신앙, 사주팔자 등 모든 종교와 모든 예언이 유행되고 확산되었다. 정치문란과 농민생활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죽어서라도 새 세상을 꿈꾸고 싶었다. “세상이 확 바꿔버려야지. 이런 쌍놈의 세상 백년 천년 살면 뭐 하노. 높은 놈들은 허세 부리며 아랫사람 잡아먹기가 극에 달하고 주먹만 한 배 하나 채우지 못하고 가렴주구 할 바에는 차라리 동학에나 가담해서 세상을 확 바꿔야지.” 서학은 천주교를 일컫는 말이다. 1631년(인조 9)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천리경 자명종 만국지도를 가져왔다. 1645년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소현세자도 아담 샬에게서 천문 지구의 천주상을 가져 왔다. 서양문물과 함께 전래된 가톨릭교는 처음에 유학자들에게 종교생활의 대상이 아니라 학문적 사상적인 호기심으로 흥미를 가져왔다. 남인학자에 의하여 신봉되었으나, 차차 재야의 양반 중인 상인 압박을 받던 부녀자들 층까지 놀라운 속도로 전파되어 갔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평등하며 남자 여자가 차별이 없다는 말에 천지개벽하는 줄 알았다. 하나님만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니 얼마나 좋았는가. 조상들도 천국에 갔는데 제사는 뭐 하러 지내느냐고 하니 아녀자들은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나라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고 세상이 평등하다는 논리가 위험한 사상이라 하여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학(西學) 천주교에 대해 맞서 최제우가 동학(東學)이란 종교를 만들었다. 전통적인 민간신앙과 유교 불교 도교의 좋은 점만 융합하여 만든 종교였다. 시천주(侍天主,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 후천개벽(後天開闢,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를 바로잡아 민중을 구제하려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나라에서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하여 탄압하여 1대 교주 최제우를 죄인으로 몰아 처형하였다. 한양의 기운은 다하고 계룡산에 정도령이 나타나 이씨왕조가 끝나고 새왕조가 시작된다는 정감록과 도참설과 예언설과 미륵신앙도 유행하여 민심을 동동둥둥 설레게 하며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한다는 말이 떠돌았다. 세상은 어지럽고 혼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든 사상과 종교와 사교가 난무하였다. 윤지충은 전라감영에 잡히어 자신이 신주를 폐기하고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를 첫째, 신주는 목수가 만든 나무 조각에 불과하고 둘째, 죽은 사람을 위해 음식을 바치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주무시는 동안도 음식을 드리지 않는데 하물며 죽음이라는 긴 잠을 드신 분들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허례허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중국 신부 주문모를 비롯한 천주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고 약 400명이 유배되었다. 가부장적 권위와 유교적 의례 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는 유교사회 일반에 대한 도전이자 지배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 주문모는 스스로 의금부에 나타나 취조를 받은 뒤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되었다. 이승훈·정약종 등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고, 왕족인 송씨, 신씨도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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