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 행님~감 깎기 전에 단풍놀이 한번 갑시더~”
“그려~그려~ 날짜 한번 잡아봐바~”
지리 상봉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단풍이 사람들이 사는 산자락까지 물들이니 아무리 시골 사는 농투성이들이지만 울긋불긋한 자연에 느낌이 없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곶감 농사를 많이 하는 엄천골 농부들은 감 깎을 시기가 닥치면 감 수확하랴 곶감 깎으랴 바빠지겠기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단풍 구경이나 한번 다녀오자는 말들이 오갔다.
드디어 날을 잡아 엄천골 일곱 농부들이 배낭매고 뱀사골 계곡으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세련된 도시 사람들이야 만산홍엽이니 만학천봉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단풍을 만난 느낌을 고상하게 표현하겠지만 시골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 표현이 입을 크게 벌리고 그냥 와아~와아~~가 전부다. 아무리 시골 농꾼들이라지만 그래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단풍을 보면 뭔가 그럴듯한 문자 한번 읊어 볼만도 한데 그냥 와아~와아~하고는 끝. 말 그대로 우리는 바보처럼 입을 쫙 벌리고 올라갔는데, 맑고 쾌청한 날씨에 원색의 울긋불긋한 물이 흘러내리는 뱀사골 계곡을 오르는 느낌을 사실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긴 하다. 머리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계곡에 전원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듯한 그런 분위기를 타고 우리는 마냥 들뜬 마음에 산길을 올랐다.올라가다가 웃긴 일. 길에서 박털보가 잣송이를 하나 주웠는데 다람쥐가 다 빼먹고 잣이 딱 한톨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봉대 행님은 다람쥐가 하나를 놓친 거라 했고 나는 다람쥐가 오며가며 먹으려고 남겨둔 것이라 했는데, 박털보가 엄숙한 표정으로 턱을 쑥 내밀고 잣 한 톨을 하늘높이 치켜들더니 “어쨌든 자연이 준 귀한 선물이니 감사히 먹겠다”며 돌로 잣을 탁탁 때려 깨었다. 그런데 잣을 깐 박털보가 박장대소를 하더니 깐 잣을 보여주는데 빈 쭉정이였다. 잣 한 톨을 먹겠다고 돌을 든 허우대 큰 박털보도 강적이지만, 빈 쭉정인지 어떻게 알고 남겨둔 다람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 다람쥐는 뛰어난 후각으로 잣을 까부러지 않고도 알맹이가 있는 건지 쭉정인지 다 아는 것이다.
병풍소와 제승대를 지나 소금장수가 소금가마니를 빠뜨렸다는 간장소에 도착하니 박털보가 배가 고파서 더는 못 걷겠다고 엄살을 떤다. 그래서 간장소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잣 쭉정이 이야기가 또 나와 모두들 무릎을 치고 다시 한번 배꼽을 잡았다. 밥을 맛있게 먹고 배가 부르니 가을볕에 데워진 따뜻한 바위에 누워 한마디씩 한다. “배부르니 나는 이제 사장 안 부럽다~” “내도 부자 안 부럽다~” “이제 내려가면 또 일을 해야 하니 단풍이나 보고 내려가지 말자” 고 되지도 않는 말들을 한다. 밥 먹기 전에는 허기가 져 배를 긁어도 등이 시원하다고 너스레를 떨던 봉대 행님이 배불리 밥을 먹고 나서 너럭바위에 등을 붙이더니 금세 코를 곤다. 박털보도 바위 위로 벌렁 누우며 “에라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안내려갈란다 내려가면 또 일해야 할낀데 그냥 여기서 개길란다” 하고 호기를 부린다.
모두들 내려가기 싫어 있는 수다 없는 수다 다 떨고는 결국 마지못해 내려가는데, 반주로 한잔씩 마신 막걸리 탓인지 농부들의 얼굴에 언뜻언뜻 비치는 단풍이 뱀사골 단풍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짝에 사는 농부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풍이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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