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로, 정말 별거 아닌 일로 시작된 싸움이었습니다. 요즘같이 습도 높고 끈적끈적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아침에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나도 궁시렁 궁시렁 거렸는데 아내가 들었던 모양입니다.오후에 아내가 무슨 말끝에 지나가는 말처럼 그 얘기를 다시 꺼낼 때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네요. 그리고 저녁 산책길에 아내가 또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화장실에서 오줌 누고 좌변기 받침대를 항상 제자리에 내려 놓아달라는 말인데, 나는 세워 놓겠다고 우겼습니다. 구시락 재를 막 넘어가던 참이었습니다. 달콤한 야생화 향기에 코를 실룩거리던 아내가 걸음을 멈추더니 “뭐라 말을 하면 생각도 안해 보고 반박한다.”며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인 아내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말투로 고갯길을 넘어서 강변길 끝날 때까지 반복설교를 이어갔습니다.20분 이상 이어진 훈시는 한마디로 <좌변기 받침대는 사용 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며, 이용 시 절대로 흘리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넉넉잡아도 10초면 될 것을 20분 이상 이어지는 (학창시설 아침 조례 시간에 교장선생님 훈화같은) 감동적인(?) 설교를 들었네요.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내가 말꼬리를 자꾸 잡았거든요. 어쨌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괜히 말꼬리 잡다가 설교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꽃향기가 어디서 나는 거지? 냄새가 참말로 좋네~ 함시롱 딴전을 피웠습니다. 아내는 두 아들을 포함하여 남자 셋과 같이 살면서 남자의 신체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소변 시 조금이라도 흘림현상을 발견하면 바로 천둥 벼락을 칩니다. 아무리 신경 써서 정조준해도 표적이라는 게 빗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왜, 어째서, 이해를 못하는지, 사격 경험이 없는 아내는 이해를 못합니다. 남자가 많은 가정에서 좌변기 받침대를 꼭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우째 생각하면 국력낭비입니다. 여자는 어차피 앉아서 일을 보니 앉으면서 받침대를 내리면 되지만, 남자는 서서 소변을 보니 받침대가 내려져 있으면 일부러 허리를 숙여 올려야 합니다. 과연 세 남자가 하루에도 몇 번 씩 허리를 숙여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국익차원에서도 받침대는 세워 두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요? 체력은 국력이라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집 화장실 변기 받침대가 항상 세워져 있어 우리 집 세 남자가 허리를 몇 번 덜 숙인다고해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전반적으로 신장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이런 사소한 일로 싸움이 커져 내전으로 발전한다면 그것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자로서의 긍지와 허리를 굽히더라도 좌변기 받침대는 내려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울러 오십년간 갈고닦은 사격실력도 더욱 더 연마하구요. 근데 내가 이런 결심을 하고 막 실행에 옮기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면서 좌변기 받침대를 살짝 세워 놓았네요. 그러기나 말기나 나는 내 결심대로 하고 두 아들의 동참 협조도 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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