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해학교에 배우러 가는 날들이 매일매일 소풍가는 것 같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정이 할머니(80)는 지난 9월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80살 가시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시화를 출품해 우수상을 수상했다. 할머니는 성인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안의중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운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 만에 얻은 성과다. 비교적 학교에서 가까운 관북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학교 가는 날이면 마을회관 앞까지 찾아오는 스쿨버스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특히 반장이라는 중임을 맡은 할머니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그러나 연세가 드시는 만큼 몸이 쇠약해져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안의중학교에서 운영하는 문해학교 프로그램은 1학년은 초등학교 1, 2학년, 2학년은 3, 4학년, 3학년은 5, 6학년 수준으로 3년 동안의 모든 교육과정 거치면 초등학교 학력이 인정된다. 오정이 할머니는 이제 초등학교로 따지면 이제 1학년을 마무리하고 2학년에 접어든 셈이다. “처음에는 학교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학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글에 익숙해진 할머니는 영어를 꼭 배워보고 싶다. “2학년부터는 A, B, C, D 영어를 배워준다는데 몸이 회복되지 않으면 학교를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영어를 배우면 TV에 나오는 단어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인데...” 최근 몸이 부쩍 쇠약해진 할머니. 지난 추석을 앞두고 허리 통증이 심해지며 급기야 수술까지 받은 상황으로 현재 집에서 요양을 할 수 밖에 없다.
서하가 고향인 오정이 할머니. “계집들은 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 아들만 제일이었지. 6.25 전쟁 때 학교 들어갔는데 그때는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숨어야 해서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 ‘ㄱ’ ‘ㄴ’ 만 가르쳤지 지금처럼 자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았어.” 할머니는 젊은 시절 총명하고 기운도 좋아 일을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40대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젊을 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골병이 난 것이지. 다들 나만치 일한 사람도 없다고들 해” 80에 가까워지면서 기력이 약해지고 정신도 조금씩 없어지자 학교에 다닐 생각을 했다.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뭘 해.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배우고 친구도 만나서 좋은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지”
할머니는 그렇게 문해학교를 다니며 배운 글 솜씨를 이번 ‘80살 가시나의 가족’이라는 글로 모든 것이 표현됐다. /자음‘ㄱ’ 과 모음 ‘ㅏ’를 공부했다./선생님이 ‘가’ 글자로 낱말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나는 공책에 가시나 썼다./선생님이 보며 ‘가시나’ 불렀다./내 나이 80살에 ‘가시나’로 불러주어 소녀가 된 것 같다.(하략) 오정이 할머니의 너무나도 순수하고 예쁜 감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처음 선생님이 글을 쓰고 싶은대로 하라고 해서 썼는데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학교에서 배운 것 쓴 것인데... 80 평생 글을 쓸 여가가 어디 있었나. 늘그막에 학교 다니면서 써본 것이 처음이다.” 그냥 생각나는 그대로 글을 썼다는 오정이 할머니.
요즘은 거동이 불편해 학교에 갈 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는 할머니에게 이제는 책이 친구가 되었다. “요즘에는 상 받으러 갔을 때 받은 책을 읽고 있다. 누워서 하루 한 장씩이라도 읽는다. 논다고 누워 있으면 잠이나 더 자겠나.” 이제는 책이 할머니의 친구가 되었다. 그래도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할머니. “1학기 때는 간단한 글자, 그리고 2학기 때는 쌍받침 들어가는 글자를 배운다. 2학기까지 배워야 한글을 얼추 다 떼는데... 2학년 올라가면 영어도 가르쳐 준다는데... 움직일 수 없으니. 빨리 몸이 좀 나아야 학교에 가는데.”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불편한 자신의 몸에 불평이다. 오정이 할머니는 학교에서 친구도 만나고 싶고 선생님도 만나고 싶다. 할머니는 문해학교에 대한 칭찬이 대단하다. “욕심을 가지고 자기 이름자 정도 배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나와서 배우면 상당히 좋다. 집에서 멍하니 있으면 뭐하겠느냐. 재미있게 글도 배우고 사람들과도 친해지면 좋지 않겠나” 여든의 초등학교 1학년 오정이 할머니는 앞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는 것이 꿈이다.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서 할머니의 꿈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길 빈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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