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함양 똥돼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예전 뒷간, 측간, 변소로 불리던 화장실 바로 아래 돼지를 키우던 모습을. 사람의 인분을 먹고 자란 흑돼지, 흑도야지는 맛이 좋았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함양에서 흑돼지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갔다. 빨리 자라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흰돼지에 밀리고, 청결·위생 등을 이유로 가정에서 사육을 기피하면서다. 함양하면 흑돼지라는 그 명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마저도 제주흑돼지, 남원흑돼지, 산청흑돼지 등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함양 흑돼지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흑돼지로 유명한 인근 남원의 흑돼지 브랜드화, 브랜드화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주목받는 제주 흑돼지, 그리고 일본에서 흑돼지(흑돈)로 가장 유명한 곳은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현에서 흑돈을 유명 브랜드로 키워낸 사례 등을 통해 함양 흑돼지의 앞날에 새로운 길잡이를 제시해 주고자 한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1. 우리나라 흑돼지의 종가 함양2. 브랜드화 박차를 가하는 남원의 흑돼지3. 흑돼지 하면 제주흑돼지?4. 세계 최고 흑돼지 브랜드 일본 가고시마 흑돈(1)5. 세계 최고 흑돼지 브랜드 일본 가고시마 흑돈(2)6. 흑돼지 종가 함양을 명성을 되찾자한집 건너 흑돼지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내걸린 제주특별자치도. 흑돼지 전문점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관광객들은 제주의 특산물 흑돼지의 맛에 빠져든다. 대부분의 전문점들에서는 200g 1인분에 1만8000원의 가격이었다. 소고기와 비슷한 가격대지만 전문점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일부 유명 전문점은 흑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대기표를 받기까지 했다. 제주도 가면 흑돼지를 먹어야지’라며 관광객들의 먹거리 1순위에 올라 있는 제주도 흑돼지는 제주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제주 흑돼지의 역사역사 속 제주 토종 흑돼지는 중국 진나라(3세기) 때 쓰인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등장할 만큼 오랫동안 사육돼 온 대표적 가축이다. 제주에서 돼지는 돗, 뒈아지, 도야지, 도새기 등으로 불렸으며, 돗통(시)은 돼지우리를 의미한다. 제주도의 재래 돼지 역시 함양 등 지리산권 재래 돼지와 비슷하게 인분이나 음식물 쓰레기의 처리를 맡았다. 제주민속촌에서 살펴본 제주도 흑돼지 우리, 돗통은 부엌(정지)에서 멀리 떨어진 집 옆에 위치했으며, 돼지가 기거하는 돼지우리(막)과 마당, 대소변을 보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담은 모두 제주도에서 나는 현무암을 1m 이상 쌓아 만들었다. 사람이 대소변을 보는 공간 바래 아래에 돼지가 주둥이를 들이밀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자연스럽게 인분 등이 돼지의 먹이가 될 수 있었다. 돼지우리는 돼지가 뛰어놀 수 있는 약 2m×5m 규모의 활동공간과 짚 등으로 천정을 만든 잠자는 공간이 마련됐다.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지역 웬만한 가구에서는 재래 흑돼지를 길렀다. 그러나 돗통(혹은 통시)은 미관상 좋지 않고 비위생적-인분을 먹여 키워-이라는 이유로 70년대 가옥 및 화장실 개량 사업이 추진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이로 인해 수천 년을 이어온 제주 재래 흑돼지는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민속촌 등 관광지에서 관람용으로만 볼 수 있는 제주의 사라진 문화가 되었다제주 돼지와 이를 통한 문화예전 제주도의 돼지는 집안의 큰 재산으로 ‘대학나무’라 불렸던 감귤에 앞서 60~70년대까지만 해도 자녀를 공부시키는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또한 집안의 대소사(혼례, 상례 등)에 빠질 수 없는 음식재료로 큰일을 치루며 얼마나 많은 돼지를 잡았느냐가 집안의 세를 과시하는 척도가 될 정도로 큰 재산적 가치를 가졌다. 이로 인해 ‘돗추렴’이라는 독특한 문화도 만들어졌다. 돼지의 ‘돗’과 모임이나 놀이 또는 잔치 따위의 비용으로 여럿이 각각 얼마씩의 돈을 내어 거둔다는 ‘추렴(어원 出斂)’이 합쳐진 말로 평소 돼지고기가 필요한 이웃끼리 얼마씩 고기를 내어 나눈다는 의미다. 제주도 사람들은 돗추렴을 통해 이웃이나 친척, 그리고 마을 간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에 빠질 수 없었던 돼지고기를 공동체가 함께 나누며 제주만의 돼지고기 음식문화도 발전할 수 있었다. 제주의 돼지는 피와 내장을 이용한 순대(수애),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만든 몸국, 돔베고기, 돼지고기 적갈(炙), 고기국수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 음식들이 예전 공동체에서 즐겨 먹었던 바로 그것이다. 천연기념물로 거듭난 제주흑돼지제주흑돼지는 지난 2015년 3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인 제주 흑돼지는 먹지 못하는 것일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제주의 재래흑돼지이다. 물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재래흑돼지는 시중에 전혀 판매되지 않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에서 사육 중인 290여 마리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을 뿐 일반 시중에 판매되는 제주흑돼지는 먹을 수 있다. 이들 흑돼지는 유전자특성 분석 결과, 육지 재래돼지와는 차별된 혈통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외형상으로도 육지 흑돼지는 귀가 크고 앞으로 뻗은 데 반해, 제주흑돼지는 귀가 작고 위로 뻗어 있다. 아울러, 제주도 특유의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하여서 체질이 튼튼하고 질병에도 강하여 우리나라 토종 가축으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제주 흑돼지 거리제주시 건입동에는 약 100m 길이의 제주도 흑돼지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10여개의 대형 흑돼지 전문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흑돼지 거리는 흑돼지를 맛보기 위한 관광객들은 물론 인근의 지역 주민들까지 즐겨찾는 먹거리 명소이다. 그 중 ‘제주 몬트락’은 4층 건물로 이뤄진 대형 흑돼지 전문점으로 대기표를 받은 이후에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주가 본점으로 서울 등 10여개의 지점을 가진 대형 프렌차이즈 흑돼지 전문점으로 태어나서 도축하기까지 평균 6개월간 항생제 없이 키워내기 위해 무항생제 인증 배합사료와 목초로 된 친환경 사료를 먹인다. 선조들이 먹던 흑돼지 맛 우리의 유전자가 기억보통 일반 돼지는 6개월이면 출하가 가능하지만 제주 토종흑돼지는 13개월은 지나야 출하할 수 있다. 몸무게도 일반 돼지가 120kg 정도에 출하하는데 반해 토종 흑돼지는 70kg 정도다.
오래 키워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토종 흑돼지. 일반 돼지보다 2배나 오래 기르는 제주 재래흑돼지의 비계가 지닌 유난히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은 비교가 불가하다. 또한 입안에서 툭 터지는 육즙의 감칠맛은 한 번 맛보면 쉽사리 잊지 못한다.
오랜 기간 힘겹게 키운 제주 재래 흑돼지. 제주대학교 정동기 교수는 제주 재래 흑돼지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선조부터 우리가 계속 먹던 맛이라 우리 몸에 유전자가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흑돼지 고기를 맛보는 순간,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옛 맛이 살아나서 맛있어 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종 흑돼지는 새끼도 적게 낳는다. 토종 흑돼지는 6~7마리 정도인데 반해 일반 돼지는 한 번에 15마리도 거뜬히 낳는다. 번식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제주 토종 흑돼지는 어디로 갔을까?5000평 농장에서 뛰어노는 제주 순수 토종 흑돼지 60여마리. 제주 늘푸른농원에서는 그 귀하다는 제주 토종 흑돼지들이 좁은 돈사가 아닌 넓은 농장을 누빈다. “풀어 놓아야 흑돼지들이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 병을 많이 하지 않으니 항생제도 쓸 필요가 없다” 늘푸른농원 양영일씨의 말이다.
어린 시절 보아오던 토종 흑돼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양영일씨 농가에서는 이것만을 고집한다. “지금도 마을에 보면 한두집씩은 토종 흑돼지를 키우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것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토종 흑돼지는 교잡된 흑돼지에 밀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물론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어 완전하게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일반인들이 맛볼 수 없다. 그러나 양영일씨가 직접 기른 토종 흑돼지들은 ‘상록가든’에서 판매된다.
그는 “돼지가 워낙 작다. 이것을 비싸게 사다가 팔면 적자일 수밖에 없다. 일반 돼지는 120kg 체중에 뼈와 머리 등을 제하면 60kg 정도 밖에 쓸 수가 없다. 그러나 토종 흑돼지는 70kg을 도축하면 40kg 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흑돼지는 14개월 된 것을 도축한다는 것이다. 일반돼지는 6개월만에 도축하는 것에 비해 배 이상 오래 길러야 하는 것이다. 또 돼지 새끼도 개량흑돈은 12~17마리가 나오지만 토종흑돈은 7마리밖에 나오지 않아 키우기가 상당히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는 “제주도 내에서 판매되는 것은 99.9%가 개량된 돼지다. 99.9%가 0.1%의 토종돼지를 죽이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제주의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다. 모두가 흑돼지라고 사용하지 순수 흑돼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순수 흑돼지의 명맥이 없어질 수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20여년 전 ‘제주 순수 흑돼지 보존회’를 만들어 토종 흑돼지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교잡된 흑돼지에 설 자리를 빼앗기며 이제는 혼자만이 명맥을 유지한다. 그는 “집에서 개인적으로 5마리 미만으로 기르는 곳은 여러 곳 있는 것으로 안다. 토종 흑돼지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10개월 이상 길러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것이 토종 흑돼지다. 6개월 정도 기르면 강아지 조금 큰 것 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 하얀 돼지 60일 정도 기른 것과 비슷한 크기다.”라며 흑돼지와 흰 돼지를 비교했다.
20여년 제주도 토종 흑돼지를 길러 온 그는 “순수 토종 흑돼지를 지키고 싶으면 지키겠지만 아직까지는 어디에서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곳이 없다.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강대용·강민구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