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라에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고위 공직자 비리 감찰을 하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놓고 검찰이 두 사람을 조사하는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져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감찰하는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다시 그 암행어사의 비리를 감찰하는 암행어사를 보내는 격이 된 것이다. 나라의 권위가 추락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18세기 조선 후기 전정 군정 환곡 삼정의 문란이 계속되고 탐관오리의 백성 수탈이 심해지자 나라에서는 특별 감찰관 암행어사를 전국 각지에 파견하였다. 암행어사는 왕명을 받아 비밀리에 지방에 파견하는 특사나 임시관리를 말한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수령의 치적과 비리를 살피고 백성의 고통과 어려움을 탐문해 왕에게 아뢰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명백한 부정이나 부패가 발견되면 암행어사는 해당 수령을 파직하고 증거 보존을 위해 관아의 창고를 봉인할 수 있었다. 암행어사는 어느 정도 비리를 막는데 기여는 했지만 임시 조치였고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어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졸개 포졸: 알려드립니다. 암행어사 출두! 암행어사가 출두 했습니다! 어리버리 암행어사: 나 정부가 즉 임금님이 특파한 어리버리 암행어사다. 말이 그려진 이 마패를 봐라. 한 마리 두 마리... 에고, 말이 세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밖에는 안 그려졌네. 하여간 수령 아니면 사또, 너 딱 걸렸다. 너 지금 농사꾼 등쳐먹고 있는 거지? 이리 오너라. 손잡고 같이 가자.재수 없어 걸린 탐관오리 수령: 나리 나리 개나리, 어서 오시와요. 뭐 다 알면서 암행어사 나리, 이 마패 얼마에 주고 사서 여기 왔어용? 으잉, 두 마리 밖에 안 그려진 마패 가지고 그렇게 많이 주고 샀어용? 그럼 큰소리도 치지 말아야지. 알았어. 내가 두 배 현찰로 줄게 조용히 돌아가시와용. 그럼 가 보시고 임금님께 잘 보고 해 주셔용! “암행어사 출두야!”를 들으면 사람들은 즉시 어사 박문수를 떠올린다. 암행어사의 대명사 박문수는 야사나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조선시대 살았던 실제 인물이다. 숙종 17년(1691) 진위현 현평대군에서 학자 항한(恒漢)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23년 경종 3년 증광 문과에 합격하여 사관에 오른다. 병조정랑에 올랐다가 노론의 집권으로 삭직되었다가 영조의 신임을 얻어 1727년에 사서로 다시 등용되었다. 영남 지방의 암행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누구보다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정의의 편에서 약자를 돕고 진실을 규명했다. 억울한 이들의 누명을 벗겨주고 탐관오리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의 고단함을 덜어주었다. 어사 박문수가 해결한 수사기록을 살펴보자. 욕정에 눈이 먼 중이 어느 대감 집 며느리를 겁탈하려다 살해한 사건,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한 여인이 남편을 죽인 사건, 외간남자와 바람이 난 아낙이 돈을 훔치고 이를 엉뚱한 사람에게 덮어씌운 사건 등 어사 박문수는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진범을 찾고 벌하고 약한 자를 돕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전국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온 박 어사는 영조에게 큰 신임을 얻었다. 이후 박문수는 세자 책봉 문제로 고민하는 임금에게 묘안을 내어 중국의 간섭을 물리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재미난 ‘원님놀이’ 이야기가 있다. ‘설에도 부모를 모르다니’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조선 영조 때 섣달 그믐밤에 박문수가 민정을 살피러 삼남 각지를 돌아다니던 중 어느 촌집에 들러 사랑채 윗방에서 부득이 설을 지내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여남은 살 먹은 아이들이 훈장이 문상을 간 사이에 원님놀이를 하고 있어 같이 끼어들었다. 서당 아이들이 암행어사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수령이 되어 박문수에게 매우 위엄 있고 정중하게 나무랐다. “너 이놈, 아무리 어명을 받고 다닌다고 하지만 양친 부모가 집에 계신 자라. 지금이 섣달그믐이라 연로하신 부모가 너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이 설 큰 명절에 크게 요긴한 일도 없으면서 타관 객지에 머물러 있으니…. 집안에는 불효요, 집 밖에는 민심소란 죄라, 그 죄가 어이 가볍다고 하리? 저놈을 매우 쳐라.” 어사 박문수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랬더니 꼬마 원님이, “저 자가 뉘우쳤으니 다시 저 밖에 곱게 모시도록 하라”고 했다. 이 일 이후로 박 어사는 섣달그믐에는 암행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박문수전’ 책에는 무씨와 구씨가 살아 구천동이라 불리우는 무주구천동에서 유씨 가족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33년 동안 영조 임금 곁에서 수많은 문제해결을 펼친 박문수는 65세 되던 해에 병이 들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억울한 자와 가난한 자와 백성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했던 어사 박문수는 길이 본받아야 할 청백리다. 부장판사까지 세상을 등쳐먹어 목이 잘리는 요즘 어사 박문수가 나타난다면 세상은 밝아질까요? 나타나 봤자 별 볼일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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