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자로 지원하면서 떠올랐던 단어들 중에 하나는 우연찮게도 “기레기”였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기사가 수준 미달인 경우 그런 기사를 쓴 기자를 비꼬는, 내지는 조롱하는 말이다. 이 말을 알게 된 당시에는 기자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기레기”라고 불릴 만한 기사를 쓰는 이들이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것은 특정 기자에 대한 저격 등의 용도가 아님을 밝힌다). 이 기사들은 분명 기사임에도 뭔가 얻어갈 수 있는 정보나 견해 등이 존재하지를 않는다.
기사는 일반적으로 전달하는 새로운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이것에 대한 정당한 근거와 자료가 있어야 하며,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들과 견해로 볼 때, 이 “기레기”의 조건을 충족하는 기사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첫째, 사건에 대해 매우 자극적인 글을 올리거나 전혀 새로운 사실 없는 뻔한 글을 올리는 경우. 최근에 늘어났다고 여겨지는 부류로, 특히 세월호 사건 등 큰일이 연이어 터지면서 급증했다고들 한다. 이들은 “충격” 등을 기사 제목으로 붙여 아주 큰일이 관련해서 터지거나 새롭게 터진 것처럼 적어놓고는 실제로는 이전에 많은 기사들에서 다루었던 일들에 대해 다루거나, 많은 이들이 훤히 하는 일반 상식 등을 거창하게 적어놓아 마치 큰 분석을 해냈다는 듯 적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백지를 적어낸 것만 못 하다. 독자들은 이 기사들에 대해 볼 의의를 상실하고 해당 기자와 기사를 질타하는 것이다.
둘째, 마치 자신이 다 알아내고 자기 자신이 최초로 그것을 적어낸 양 출처를 생략하는 경우.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이라는 어구로 시작하는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이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은 인터넷 트렌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름 있는 사이트들이며, 당연히 이들에게는 엄연히 이름이 있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인 사이트들 전체에서 유행하며 이것에 대한 이유 등을 구술, 설명해주는 경우 이런 기사는 오히려 평범한, 내지는 오히려 좋은 기사이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고 “오, 이 사이트는 이게 유행이네”하며 써내는 것은 기자로써 스스로 글을 쓸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에 관해 써낼 능력이 없음을 자가 증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자들은, 특히 그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도대체 자신들의 커뮤니티의 일을 왜 자신의 일마냥 출처 없이 적느냐, 그리고 새로운 내용이 도대체 무엇이냐 질책하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또는 사회적, 그리고 기타 부문에 대한 생각을 기준으로 기사에 필요한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그러한 이념을 드러내는 경우. 독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매우 의견이 갈리는 이른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한경오(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의 경우부터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관련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메갈리아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예시가 존재하며 이때에는 이유도 있고 출처도 있으며 새로운 것을 전하지만 그 견해가 사람들의 인식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광고하기 위한 것으로만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이 극단적 신념은 특정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들의 방식대로 독자들도 똑같이 돌려주는 수밖에, 그러니까 “이건 다 틀렸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반박할 근거가 보여지지 않으니까.
이외에도 자신의 기사에 대한 비판은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대한 도전인양 무시하는 경우, 외국어 인터뷰나 어문 등의 번역을 고의 또는 실수로 잘못 번역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검토,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제출해버리는 경우(이것은 방송국 뉴스에서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다) 등이 있다. 이런 기사들에 대해, 그리고 기사를 쓴 기자들에 대해 독자들은 기레기라는 말로 비판하고 조롱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기레기라는 신조어는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기사를 접하고 이 기사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정보이냐 등을 평가하는 잣대가 생겨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제가 표면적으로 굵어지는 이유는 한국에서 유독 그 관리와 인지가 박하다고 여겨지는 저작권과, 기사의 논리적인 일관성의 결여 등으로 보인다. 즉, 기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오히려 망각하는 경우가 잦아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쓰고 기사를 쓰기 위해 기사들을 접해보면서, 단순히 기자와 그가 쓰는 기사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글에도 이와 연관된 일은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이 존재하고 이는 사회적 인식과 풍토의 변화가 일어나야 고쳐질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모두가 그 중요성을 망각하는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작권과 논리적 논의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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