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함양시장. 오랜 전통만큼이나 그 곳을 생활의 주 무대로 살아가는 오랜 이들이 많다. 정확하진 않지만 함양시장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라면 제일약국 앞 노점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김재호(90)씨가 아닐까 한다. 올해로 아흔인 김씨는 60년을 이곳 함양시장에서 한 자리를 지키며 구두 수선을 해 왔다. 함양시장의 산 증인이기도 한 김씨. “예전 대목장이 서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 지금은 그때의 1/10도 되지 않는 거야” “이 앞쪽으로는 모두 논이었어. 요짝으로는 불 때는데 쓰는 갈비와 나무들이 있는 나무전 있었지. 장날이면 참 사람이 많았어, 주변이 바글바글 사람들로 끓었는데...” 장날이라지만 당시만큼 사람도 없고, 또 그를 찾는 이는 더욱 줄었지만 그는 지난 6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군대를 제대한 이후 30살 때부터 구두수선을 시작한 김재호씨. 당시 함양시장에는 그를 비롯해 5명 정도가 구두수선을 하며 비교적 호황을 누렸다. “그때는 고무신 한 짝 때워주는데 2원50전을 받았지. 옛날에는 슬리퍼도 없고 검정 고무신 밖에 없었어. 흰 고무신은 멋쟁이들이 신었던 거야. 장날에는 모두가 바빴어. 나무 한 짐 짊어지고 장에 와서 점심도 못 먹고 풀빵으로 때우고, 갈치 한두 마리, 호롱불기름 한 병 사서 옆에 달고 집에 가던 시절이야. 지금은 우리나라 부자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어” 어렵던 시절 살기위해 시작했던 구두수선이 그의 평생 직업이 되었으며, 이제는 노년의 훌륭한 취미생활이기도 하다. “집에 있으면 뭐 할 거야. 가만히 누워 있으면 시간도 안가. 장에 나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시간도 보내고 얼마나 좋아” 장이 서는 날이면 제일약국 앞에서 어김없이 그를 만날 수 있어 언제나 단골손님들이 찾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 손님들이 계속해서 찾았다. 슬리퍼를 고치려는 아주머니, 병환으로 오랜 기간 외출을 못해 많이 상한 구두를 들고 오신 할머니, 해진 운동화를 들고 온 중년까지. “나야 고맙지.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고맙고, 그 사람들 덕에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 수 있어서 더욱 고맙지” 6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그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들에 대한 배려가 묻어 있다. 그는 몸이 편찮지 않고 비가 억수같이 오지 않는 날이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킨다. 물론 5일에 한 번씩이지만. 연륜을 말해주듯 굵고 거친 손마디의 김씨. 해진 운동화도 바늘을 쥔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자 감쪽같이 새것처럼 만들어진다. 밑창이 배고프다며 입을 벌리는 슬리퍼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곧바로 바늘에 실을 연결해 꿰매기 시작한다. 재봉틀도 없다. 아흔이라는 연세에도 돋보기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5분여 만에 양쪽 신발이 벌렸던 입을 말끔하게 다물었다. “고치러 가져오는 것들은 보기만 해도 어떻게 고쳐야할지 척 보면 알지. 그 동안 한 것이 얼만데 이젠 구두 박사지 박사” 그가 작업하는 주변에는 40~50년 된 손때가 묻은 공구들이 한 가득이다. 예전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때우던 공구들이 아닌 구두수선 공구들로 바뀌었다. “요즘 신발은 잘 떨어지지도 않아. 고무신도 없고. 뾰족구두에 신사화, 등산화, 장화 등이지. 시대가 변한 만큼 많이 바뀌었어” 60년 구두수선의 회한이 묻어났다. 그는 지리산함양시장은 물론 안의시장에서는 서울약국 앞에서, 산청시장에서는 서울의원 앞에서 일을 한다. 한창 젊었을 적에는 인월시장까지 다녔다지만 이젠 힘에 부친다. 그가 구두수선을 위해 들고 다니는 짐은 간소하면서도 모든 것을 갖췄다. 손가방 2개에는 온갖 공구들과 수선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가득이다. 무게만도 가방 1개당 25kg으로 합쳐 50kg을 들고 5일장을 순회한다. “요즘에는 고쳐 쓸 생각을 하지 않아. 못 쓰는 것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예전에 비해 일이 반도 없어. 그래도 나와야지. 나를 찾는 사람들이 계속 있는데...” 일거리가 반으로 줄었지만 장날이면 언제나 그는 그 자리를 지킨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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