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과 저녁 먹다가 귀농 10년 만에 농사 포기하고(때리 치우고) 공단에 취직했다는 사람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귀농인은 정말 타고난 농사꾼처럼 일을 잘했다 합니다. 손가락이 보통 사람 두 배로 굵고 힘도 좋아 일 하나는 누구보다도 잘하는 사람이었다네요. 고추도 많이 심고 감자랑 오미자 등등 복합영농을 했다는데, 자기 일 다 하면 이웃 일도 나서서 도와주는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힘 쎈 농부가 10년 만에 농사는 할 게 아니라고 선언한 뒤 손 탈탈 털었다 합니다. 여름 저녁 시원한 복국을 먹으며 지인은 마치 남의 말 하듯 얘기했고, 나도 남의 얘기 듣듯 들었는데 사실 그 귀농인 이야기는 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급변한 기후처럼 농사짓는 사람들의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농사만 잘 지으면 되었다는데 지금은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판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직거래 판로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직거래 판로가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농사짓느라 몸 상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니 하는 말입니다. 농산물의 유통환경이 달라져서 지금의 유통구조에 의지하여 농산물을 공판장등에 계통 출하해서는 인건비가 안 나오는 현실입니다. 휴천에 2만평의 밤 산을 가지고 있는 한 지인은 그 많은 알밤을 놉을 대어 수확하여 수매하고 나면 본인 인건비가 나오지 않아 알밤 농사 포기하고(때리 치우고) 그 넓은 밤 산을 백만원 받고 도지를 주고 있다 합니다. 그나마 내 몸 안 상하고 백만원은 확실한 수입이라는 거지요. 하긴 나도 10년 전에 이웃이 힘들다고 넘겨준 밤 산을 받아서 3년 농사지은 적이 있는데 부부가 한 달 내내 밤을 주워 수매를 하고 나니 남는 게 고작 돈 백만원과 요통이라, 병원비도 안 나온다고 손을 털었던(때리 치웠던) 적이 있습니다.
농산물을 공판장 등 계통 출하에 의지하여 판매 하다보면 내손에 남는 게 없기에 많은 농부들이 지인을 통해 직거래 판매에 애를 쓰고 있습니다.(또는 그게 쉽지 않아 때리 치우고 있습니다.) 잘 키워서 도시로 시집보낸 딸이 여덟쯤 되는 농부라면야 그나마 딸 사위를 통해 판로가 확보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농부는 농산물 수확기가 되면 판로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증권회사 다니는 사위가 많이 판매를 해 주었지만 사위 입장에서는 같은 농산물을 매년 팔아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말은 팔았다 하고 실제로는 자기 돈으로 사서 선물로 돌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친지들이 시골 농가를 도와준다고 사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년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판로문제로 고민하는 함양 농부들이 모여 말들이 오갔습니다. <어이~유농부~ 올해는 자네 곶감 사 묵는 고객한테 내 오미자도 쫌 팔아주면 안될까?> <되지 왜 안되겠어요? 행님~ 그 사람들이 곶감만 묵는 사람들이 아니니 말만 잘하면 오미자도 제법 팔 수 있써요~>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농부 수십 명이 다섯 번 여섯 번 자리를 만들어 뭉쳐야 산다면서, 내가 판매하지 못하는 농산물을 형님 언니 누이 동생들이 나서서 서로 팔아주는 <함양농산물직거래영농조합법인>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인 이름으로 농산물 가공공장을 만들어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고 생과로 못다 판 것은 엑기스나 분말 등으로 가공하여 팔기로 하였습니다.
** 농산물 판매로 고민하는 함양 농부님에게 조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더. (법인 추진위원회 서기 / 유진국 010-5473-6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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