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이후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함양 출신 항일 의병 33인과 산청 진주 출신 의병 등 42인의 인적사항 등이 기록된 문건이 공개됐다. 함양지역에서 대거 항일 의병들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면서 함양이 독립운동의 본거지로서 큰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문건을 공개한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국가기록원 문건 ‘폭도에 관한 편책’ 등에서 박동의 경남창의군에서 활약한 항일투사 42인에 관한 활동상황과 인적사항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폭도에 관한 편책’은 일제가 의병들의 토벌과정을 기록한 책자다. 정재상 소장이 공개한 문건에는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호남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함양출신 이선전(李宣傳·마천면), 산청출신 권재윤(權載胤·시천면), 이성진(李聖辰·〃), 하동 이태현(李泰鉉·악양면), 진주 주금석(朱金石·대평면) 등 42인에 대한 기록이다. 문건에는 출신지별로 주소 직업 성명 나이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으며 지역별로는 함양군 마천면과 백전면, 산청군 삼장면 주민이 대거 참여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선전·이태현·권재윤·이성진·주금석 선열은 1907년부터 산청출신 박동의 경남창의군 소속의 의병장으로 지리산 일대인 함양·산청·하동·진주·거창·합천·남원·구례 등지에서 권석도(함양 백전면), 이덕길(산청·건국훈장, 2014년), 이학로(경북영천), 박매지(하동), 이사언(합천), 서병희(양산) 등 의병장과 함께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1908년 이선전·이태현·권재윤은 하동·함양·산청에서 각각 일본군에 피체되고, 주금석은 1909년 진주에서 피체됐다. 그렇지만 이성진은 1909년 이후 까지도 지리산 일대서 결사 항전했다. 또 이들과 함께 활약한 함양군 마천면 문성주(45) 박춘원(55) 등 36인은 당시 마천면장이었던 노지현(盧址鉉)과 창촌마을 이장 김찬언(건국훈장, 2014년)·김순오(건국훈장, 2014년)·추성마을 김홍대(건국훈장, 2014년)·휴천면 목동 이안옥(건국훈장, 2014년)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1908년 6월 11일 박동의 의병장과 함께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있던 일본군 입석수비대를 공격해 일제에 큰 타격을 가하는 등 일제치하에 있던 산청?하동경찰서와 군청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했다. 하지만 1908년 10월 17일 박동의 경남창의대장이 산청군 시천면 동당에서 전사하자 이들 의병들은 자진 해산했다고 문건은 밝혔다. 정재상 소장은 “이번 자료는 함양·산청·하동·진주 지역민이 항일투쟁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중의 하나다”라며 “특히 당시 마천면장으로 있으면서 의병활동을 적극 도운 노지현 선열과 결사항전하다 체포돼 모진고초를 겪은 이태현·이선전·권재윤·주금석 그리고 1909년까지 결사 항전한 이성진에 대해서는 명백한 항일자료가 발굴된 만큼 해당 지역민과 함께 정부서훈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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