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출출한데 어탕국수나 한 그릇 할까?”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마을 대청소 하는 날, 장정들은 예초기 메고 엄천강 마을길 따라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고, 할머니들은 낫으로 살구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칡덩굴을 걷어내며 한손 거드신다. 두어 시간 땀 흘린 보람이 있어 어지럽게 자란 풀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풀숲에 숨어있던 버려진 양심도 수거하고 나니 모두들 배가 출출할 때가 되었다. 마침 노인회장님이 오랜만에 천렵을 하자고 제안하셔서 모두들 땀 훔칠 겨를도 없이 집에 가더니 메도 가져오고 뜰채도 가지고 오고, 절터 아지매는 고기 담을 물통을 하나 가지고 왔다. 엄천강처럼 물 맑은 강도 많지 않을 것이다. 엄천강에는 아직도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서식하고 있고 꺽지, 쉬리 등 일급수에만 사는 물고기들도 많이 잡힌다. 모래무치나 갈겨니는 흔하고 숭어만한 누치도 제법 있다. 십 몇 년 전 내가 귀농했을 때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 이었다. 뜰채로 강가나 보의 수로를 훑으면 메기, 장어, 은어 등 큼직한 넘들이 올라와 구워먹고 매운탕 끓여먹고 튀겨먹고 정말 즐거웠다. 루어 낚시로는 어른 운동화만한 꺽지가 올라와서 소금구이 해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엄천강에서 물고기 잡기 어렵지 않다. 메를 가지고 온 사람은 바위를 꽝꽝 두드려 숨어 있던 고기가 기절해서 떠오르면 주워 담는다. 뜰채를 가진 사람은 몰이꾼과 한조가 되어 몰이꾼이 반대쪽에서 물장구를 치며 몰아주면 뜰채꾼은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대로 건져 올린다. 좀 무식하게 잡는 사람은 가느다란 뽕나무 가지로 철벅철벅 수면을 두드려 떠오르는 고기를 줍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서 고기를 제일 잘 잡는 대수 행님은 맨손으로 잡는다. 대수 행님이 고기 잡는 거 보면 참 신기하다. 강물에 엉덩이를 담그고 쭈그리고 앉아 바위 밑에 손을 집어넣어 한 마리씩 잡아낸다. (올쿠나~ 물고기는 저렇게 잡는구나~)싶어 따라 해보니 이상하게 내손에는 고기가 들어오지 않고, 대수 행님은 손만 넣으면 큼직한 고기가 잡혀 나오는데 마치 몰래 숨겨놓은 보물을 꺼내는 거 같다. “행님~ 우째 그래 고기를 잘 잡소? 내는 똑같이 해도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하니 “고기가 있는 곳에 손을 넣어야 잡히지~ 없는데는 백날 찔러봐야 고기가 잡히능가?”하며 즐겁게 웃는다. 고기가 어디 숨어있는지 모르는 나는 물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물통 들고 따라 다니며 잡은 고기 수집만 했는데 반시간도 안 되어 통이 넘친다. 펄떡펄떡 뛰어 도망가는 넘들도 제법 있어, 결국 내가 잡은 고기는 마이너스로 열 몇 마리다.ㅋ 마을회관에 와서 가마솥 걸어 놓고 고기 배를 따는데 기생오래비가 제법 보인다. 여기 사람들은 쉬리를 기생오래비라고 하는데 왜 기생오래비인지 고기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생오래비는 대부분 메로 바위를 쳐서 잡은 것들이고, 손으로 잡은 것들은 큼직한 갈겨니와 모래무치가 많다. 시골 사람들은 모두 어탕 끓이는데 나름 숨은 비법을 가지고 있어 나는 내심 기대가 되었다. 모두들 펄펄 끓는 가마솥 옆에서 저만의 비법을 공개하는데, 얼른 먹을 욕심에 나는 대충대충 끓여 먹자고 우기고, 자칭 어탕의 대가이신 상태 어르신은 “말도 안 돼~ 적어도 대여섯 시간은 펄펄 끓여야 육수가 제대로 우러나와~” 하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간을 다 해 놓았는데 숨어있던 대가가 나타나서 소금을 또 집어넣고, 이런 저런 고수들이 또 나타나서 잘 돼가나 본다고 솥뚜껑을 들었다 놨다 하며 이것저것 집어넣으니, 내가 어탕 잘한다는 식당에서 먹어본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먼 신기한 어탕국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어탕국수를 후룩후룩 먹는 사람들의 세포 속에는 원시 수렵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어 “흐음~ 이 맛이야~”하며, 신기한 어탕국수도 다들 맛있게 먹는다. 찬밥까지 말아서.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