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사이에 오는 더위가 만만찮다. 아침에 조그만 화단에 풀을 뽑는데도 금방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들판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내 꽃밭은 반평 남짓한 초승달 모양의 우리집 뒷곁에 붙은 자투리 화단이다.
지난달 하순경 회사 아주머니가 봉선화 모종 몇 포기를 신문에 싸서 건네주면서 심어 보란다. 그 마음씨가 곱기도 하려니와 정년 8년째 꽃 한포기 심지 않은 생활이 메마른 것 같아 어디든 심어 볼 요량으로 받아왔다. 잡초가 무성했던 화단을 정리하고 어린 모종을 심고 뿌리 내릴 때까지 물을 주었더니 지난주 빨간꽃 몇 송이로 화답했다.
50~60년대에는 집집마다 담장 밑이나 장독대에 봉선화, 맨드라미, 채송화를 제일 많이 심었었다. 봉선화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의 암울하고 처량했던 처지를 홍난파 선생이 ‘울밑에선 봉선화야’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만들어 슬픔을 달랬던 민족의 애환을 같이 했던 우리 서정성이 묻어 있는 꽃이다.
화장품이 귀하고 변변하지 못했던 시절에 소녀들의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것이 여름철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였다. 요즈음에야 좋은 화장품이 넘쳐나고 매니큐어 색상도 다양하여 원하는 색을 몇 초 만에 바르는 시대지만 봉선화 물들이기처럼 번거로운 노력 끝에 오는 잔잔한 행복감을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는 곳이 여중학교 정문 앞이라 등하교시간 길목에 가득한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으로 활기가 넘쳐난다. 요즈음 여중생들의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한 어색하게 보이는 모습들이 많다. 그 나이에는 있는 그대로의 청순함이 최고의 예쁨인데 외모지상주의에 너무 일찍 빠져 순수함을 잃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세대의 시각인가 생각해 보지만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나만의 희망사항이겠지만 봉선화 꽃물들이기가 적당한 수준의 화장이 아닐까.
꽃을 심는다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 그리고 심는 사람의 마음 향기까지 전할 수 있는 봉사라 생각된다. 집주변에 있는 자투리땅을 찾아 자기만의 화단을 꾸며보면 어떨까. 이 작은 운동이 퍼져 나가면 주변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한 환경이 될 것이다. 꽃을 심을 땅이 없으면 마음밭에라도 꽃을 심어 보자. 견디기 힘든 복더위에 몸을 위한 보양식에 마음을 위한 정서적인 보양을 더한다면 여름 더위를 건강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내 꽃밭에 첫 손님이 다녀갔다. 아주머니 한분이 처음 예쁘게 핀 봉선화꽃을 모두 따갔다. 본인이나 딸, 혹은 손녀의 손톱을 예쁘게 물들일 것임을 생각하니 흐뭇하다. 그러나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듯이 종자로 쓸 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두 송이쯤 남겨두고 따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꽃을 따러올 다음 손님이 기다려진다.
봉선화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라’라고 한다. 하지만 봉선화를 건드려 더 많은 꽃들이 펴져나가 온 세상이 봉선화 꽃물처럼 고운 빛깔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내친김에 봉선화 모임이라도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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