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끝에 밝게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 마음에 큰 기쁨과 감동을 준다. 이 아침에 필자는 장마철에도 빨래를 널 수 있는 좋은 날씨를 주심에 감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본다. 요즘은 거의 건조까지 되어서 나오는 세탁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집은 십 수 년도 더 된 세탁기가 군말 없이 열심히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째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전업주부 못지않은 역할을 맡게 된 필자는 늘 빨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손빨래야 아내가 해 주니까 별 문제가 없다. 그러고 보면 고작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를 널고 걷는 것이 내 임무에 불과한 것이지만, 요즘처럼 장마철이 되면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 언젠가는 밖에 있던 건조대를 좁은 거실에 들여놓고서 빨래를 널어놓았더니 하루 이틀이 지나도 빨래가 마른 건지 덜 마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간밤에 잠시 비가 오더니 아침이 되자 이렇게 좋은 햇볕을 주실 줄이야? 정말 꿈만 같았다. 역시 빨래는 햇볕에 빠삭빠삭해지도록 말려야 개운한 맛이 난다. 장마철에 햇볕은 노신사 주머니에 들어있는 빳빳한 지갑 같아서 쌓였던 근심을 한꺼번에 해결해 준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흔하게 느꼈던 물과 바람과 햇볕은 생물들에게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미생물들이나 식물들도 그렇겠지만 고등생물인 우리 인간들조차도 물과 바람과 햇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마침 어제가 초복이었다.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까, ‘초복은 나락이 한 살 먹는 날’이라고 하셨다. 초복과 중복과 말복, 삼복더위를 지나면서 논에 심어 놓은 벼들이 나이를 한 살, 두 살, 세 살을 먹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나락이 우리 입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생각 같아서는 푹푹 찌는 삼복더위도 없었으면 좋겠고, 지루한 장마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다 필요하기 때문에 있다는 말이다. 태풍도 마찬가지일 거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생각하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오염된 공기를 순환시키고 희석시켜서 모든 생물들이 시원하게 숨 쉬고 살라는 하늘의 배려인 것이다. 초복 중복 말복을 보내면서 개나 잡아먹고 삼계탕 골목이나 기웃거릴 생각 말고, 저 논에 있는 나락들처럼 우리도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어서 빨리 철이 들었으면 좋겠다. 재난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자연재해와 인재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재난에 대해서 늘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재난에 대한 피해를 줄여 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매년 수 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놓고 볼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재난들을 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절대자 앞에 무력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재마저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을 보면 인간은 역시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재해를 겪을 때마다 좀 더 겸손해져야 하고 절대자 앞에 복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풀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며칠 동안 계속되던 장맛비가 그치고 모처럼만에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떠도는 코스모스 꽃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가을하늘 같은 높고 푸른 하늘, 벌레 소리들 산새소리들이 난데없이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구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나 보다. 지구가 늙었다고 생각하니 슬픈 생각이 든다. 머잖아 지구를 요양원에 보내야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지구가 오늘도 힘겹게 돌아가면서 어떻게든지 함양 산청 땅을 지켜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 지구를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에어컨을 돌리고 자동차를 굴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대신에 교회 마당에 있는 뺑뺑이 위에 이불을 널어놓고 처마 밑에 쳐 놓은 거미줄을 걷어내면서 거미한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거미줄을 걷어서 잠자리를 잡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동네 어귀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깻잎 뜯어 넣고 매운탕을 끓여주셨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그립다. 장화 신고 질척거리는 신작로를 걸어 다녔지만, 간간히 지나던 버스들은 속도를 줄여주었다. 지나가는 버스마다 손을 흔들어 주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 등하굣길 만나는 어른들마다 고개 숙여 인사했던 그 시절이 정말 좋았다. 여름내 쳐놓아서 지린내가 진동하는 모기장이었지만, 그 안에서 뒹굴며 잠들었던 형제들이 그립다. 오늘같이 빨래하기 좋은 날,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서 냄비에 물 얹어놓고 국수 한 봉 끓여볼 요량으로 가스 불을 켰다. 후끈하게 느껴지는 화기가 2016년 여름을 조금씩 더 익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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