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제법 굵어지고 있다. 지난 봄 감나무 밭에 거름을 져다만 놓고 아직 못다 뿌린 것이 있어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밭에 갔더니, 윗밭에서 중촌 영감님 내외가 풀을 메다가 농부를 보고 웬일이냐고 하신다. 이제사 거름 준다는 말이 안 나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거름 주는 가벼?” 하신다. “네~” “이제?” 이제라는 말에 뜨끔하고 챙피하다. ‘이제?’ 라는 말에는(도대체 지금이 몇 월인데 여태 거름을 안주고 게으름 피우다가 ‘이제’사 주느냐?)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농사란 때가 있는 법인데 지금 거름주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다. 감이 굵어지기 시작하니 가지가 휘어진다. 달리기도 참 많이 달렸다. 수확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기는 하지만 올해는 운이 따라주면 작년 두 배는 수확할 수 있을 거 같아 흐뭇한 심정으로 거름을 흩어주는데, 영감님 내외가 뭐라뭐라 흉을 보는 거 같다. 하던 일을 멈추고 거의 병적인 호기심에 귀를 기울이니, “저래 해도 감이 달리는 거 보면 참 재주도 용타~” “내 말이 그 말이여~ 아무것도 안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할 거는 다해~” 몰래 듣는 말에 칭찬이 있을 리가 없다. 더 들어봤자 좋을 거 없다 싶어 뭐라 흉을 보던 말든 부지런히 거름이나 흩었다. 환삼덩굴이 또다시 감나무를 감고 올라가고 있고 밭둑에서 넘어온 칡넝쿨도 많이 침범했다. 잡초도 키가 많이 자랐지만 감나무 키가 더 크니 잡초 자체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덩굴이다. 덩굴이 감나무 둥치를 감고 올라가고, 잡초를 사다리 삼아 감나무 가지로 뛰어 올라가니 이 무뢰배들을 방치하면 감나무가 햇빛을 못 보게 된다. 덩굴은 수시로 걷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거름을 흩다가 눈에 가시같은 덩굴을 낫으로 걷어내는데 윗밭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중촌 영감님이 혀로 쯔쯔하는 소리는 (그래 가지고는 돼도 안해~ 예초기로 풀까지 깨끗이 베어 주야지~)라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진작 그렇게 했어야했다. 감나무 잎이 나기 전에 전정을 해서 수형을 잡아 줬어야 했고, 거름은 지난 가을 수확한 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로 뿌려 줬어야했다. 그리고 예초기로 제초작업을 적어도 두어 번은 더 했어야했다. 과수를 재배하는 방식에 유기농이다 친환경이다 다양한 농법이 있겠지만 내가 하는 방식은 채취농이다. 관행농법도 아니고 유기농법도 아니고 되는대로 열매만 채취하면 된다는 식이라 평생 관행으로 농사를 지어오신 이웃 영감님 눈에 나는 한심농이고 관심농이다. 저래 농사지으면 안 되는데 참으로 한심하지만 그래도 이웃이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관심이 안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할 일은 안하고 열매만 수확하려는 얄팍한 수작에 걱정이 되어 쯔쯔 혀가 차지는 것이다. 보이는 대로 덩굴만 대충 제거하고 아침 먹으러 집에 가는 길에 윗밭에 올라가 보니 들깨가 자라고 있는데 밭고랑에 풀이 거의 없다. 영감님 내외가 풀이 올라오기 무섭게 괭이로 긁어버리니 천하의 풀도 당해낼 수가 없다. 처음에 콩을 심었다가 멧돼지가 내려와서 갈아엎는 바람에 들깨를 다시 심었다 하신다. 농사는 본인만 부지런하면 될 거 같은데 산짐승이 방해하면 허사가 되기도 하고,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예 망치기도 한다. 나는 남들만큼 농사를 잘 짓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할 거는 다하기에 다만 하늘이 도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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