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 앞에서 말 잘하는 사람이 나는 참 부럽다. 달변으로 청중을 휘어잡고 연단을 쾅쾅치며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구라를 치는) 정치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명견만리 같은 프로에서 자신의 주장을 조근조근 펼치고 감동을 전달하는 다양한 직종의 강연자를 볼 때면 참말로 말도 잘한다는 생각에 부러워서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과 비교해보게 된다. 정말 세상에 나처럼 말재주 없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 학교 졸업하고 군 복무 마치고 취업을 하는데 그 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한창 날아오를 때라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왠만한 대기업도 어렵잖게 취업이 되었다. 전공과 관련 없는 사람도 일단 뽑아서 새로 가르쳐 가며 일을 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같이 입사원서를 낸 친구들은 두 군데 세군데 척척 합격해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데 나는 면접만 보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말재주 없는 내가 면접 때마다 엉뚱한 말만 늘어놓아 면접관의 눈에 벗어난 것이다. 어쨌든 말 잘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면접 연습을 한 뒤 석달동안 여러 군데 지원하여 한군데 겨우 합격했다. 사족이지만 그 직장에서 나는 2년간 해외무역 업무를 하다가 사표를 내고 오파상을 차렸는데 생각처럼 사업이 되지 않아 그만 두었다. 그런데 다행히 지금의 나는, 지리산 오지마을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고 있으니 말재주가 없어도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농사는 말로 짓는 것이 아니고 땀으로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말주변도 없다보니 시골 살면서 무슨 작목반 반장이니 무슨 무슨 모임 회장이니 하는 감투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얼마 전에 강연을 해달라는 (나로서는 상당히 황당한, 정말로 어이가 없는, 말이 안되는) 요청이 들어왔다. 모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귀농귀촌박람회에서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달라는 것인데, 나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나는 말 주변이 없어 박람회같이 큰 행사에 어울리는 강연자가 아니니 다른 사람을 섭외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냐고 알았다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일주일 뒤에 박람회 주최측에서 (좀 더 높은 직급의 다른 사람이) 같은 내용으로 또 전화를 해왔다. 사실은 귀농관련 책을 쓴 저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섭외를 하고 있는데 다른 저자들은 모두 그 날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섭외가 안되니 내가 꼭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내가 작년에 쓴 책 ‘반달곰도 웃긴 지리산농부의 귀촌이야기’ 에 나오는 경험담을 바탕으로 강연을 해주면 좋겠고 부담스러우면 간담회 형식으로라도 한 시간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박람회라면 사람이 적게 오지도 않을텐데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긴장하며 강연할 생각을 하니 발바닥이 오그라들어서 재차 단호히 거절했다. 거절을 하면서 말주변 없는 내가 그 강연을 하면 박람회 측에서 입게 될 피해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어쨌든 한 시간만 어떤 형식으로든 수고해주면 강연료로 많이는 못 주지만 거마비조로 오십만원을 주겠다고 한다. 고백컨대 나는 거마비 얘기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한시간 짜리 강연인데... 엄청 쎄구나....제기 랄... 오십만원이라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볼텐데...이 강연을 내가 맡으면 박람회 측에서 입게 될 피해까지 조목조목 대며 사양해 버렸으니...) 나는 다시 생각해보니 강연파일을 준비해서 하면 괜찮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 강연을 한번 잘 해보겠다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 입이 지 마음대로 두 번이나 전화를 주셨는데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해버렸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면, 돈은 말재주 없는 농부를 명강사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 시간만 우째 우째 하고 나면 거금 오십만원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내가 정말 말 재주가 없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군 복무 시절 사단장 앞에서 브리핑 한 번 잘해서 포상휴가까지 받았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행사 담당자가 다시한번 전화할테니 좀 더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다시 전화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만일 전화가 오면 못이기는 척 슬그머니 하겠다고 하면 되는데 전화가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으니 내가 전화를 해서 ‘한번 해봅시다~’ 해야 하는데, 그 놈의 체면 때문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역시 나는 말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맞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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