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2@조선 최고의 선비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 그의 나이 열여섯.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 최고의 여류화가 신사임당. 율곡 이이는 어머니 묘 옆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시묘살이라 함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일을 일컫는다. 예송논쟁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며 17대 왕인 효종이 죽자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인조의 왕후)가 상복을 몇 년 동안 입는가를 놓고 벌인 서인과 남인의 싸움을 말한다. 송시열을 대장으로 하는 서인들: 효종께서는 장남이 아닌 인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므로 3년상이 아닌 1년상으로 상복도 1년 동안만 입어야 마땅하옵니다. 윤휴, 허목을 대장으로 하는 남인들: 효종 왕이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왕위에 오르면 장자나 마찬가집니다. 왕은 장자의 예로서 3년 상을 치르며 3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마땅하옵니다. 효종의 아들 18대 현종은 머리가 아팠다. 서인들이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고 있어 송시열의 눈치를 보았다. 효종: 1년 상으로 하라. 이는 아버지 효종을 장남이 아닌 차남이 왕위를 물려받은 것으로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은 매우 소극적 태도로 서인 편에 손을 들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효종의 비가 죽자 자의대비가 입어야 하는 상복을 놓고 예송논쟁은 다시 재현되었다. 서인들: 둘째 차남의 왕비가 돌아가신 것이므로 1년이 아니라 9개월만 상복을 입으면 되옵니다. 남인들: 왕의 비가 돌아가셨으므로 왕후의 예로서 자의대비는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합니다. 현종: 머리가 몹시 아프구나. 전에도 1년이니 이번에도 1년 동안 입도록 하라. 이번엔 남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왕의 정통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이처럼 붕당간의 싸움은 완전히 편싸움으로 변질되어 갔다. 붕당 싸움의 정점은 숙종 때이다. 지면 상대방을 아예 전멸시켜 버리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3번의 환국이 일어났다. 서인과 남인의 죽고 죽이기 싸움은 엎치락뒤치락하다 남인이 아작 나고 서인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남인의 영수 허적이 왕궁의 천막을 허락없이 마음대로 갖다 썼다. 괘씸죄에 걸린 남인은 역모를 꾸민다고 하여 초죽음 당한 것이 경신환국이다(1680년).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가 후사를 낳지 못하자, 숙종은 궁녀 장옥정을 후궁으로 삼았다. 숙종: 옥정아, 너 오늘 왜 이리 예쁘냐? 누구 맘대로 예쁜거냐?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냐? 장옥정 김태희: 후궁은 내 미모에 어울리지 않아요. 희빈으로 승격시켜주면 뽀뽀 한번 해 줄게요.장옥정이 왕자 윤(昀)을 낳자 당장 장희빈이 되고 아들은 세자책봉 되었다. 서인 송시열이 세자책봉은 잘못된 일이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서인 일파는 초죽음으로 숙청되었다. 서인이 몰락하고 장희빈을 밀고 있는 남인이 정치 실세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 기사환국이다(1689년). 장희빈이 낳은 왕자 윤은 20대 경종 임금이 되었으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숙종: 늦은 밤인데 시녀 방에 웬일로 불이 켜져 있느냐? 아녀자들이 고스톱치고 있는 거 아니냐? 개평이나 뜯어볼까... 최 무수리 한승연: 어머나! 왕님이셔요? 저희는 그저 첫 번째 왕비님이셨던 폐위된 인현왕후님이 너무 생각나서 옛날 앨범 사진을 보며 슬퍼서 울고 있었어요. 흑흑. 왕후님은 참 인자하시고 덕도 많으신 분이었는데 쫓겨나시고... 흑,흑. 숙종: 오호-, 무수리(시녀) 인 네가 옛 마나님 인현왕후가 생각나서 옛날 동영상을 보며 울고 있었단 말이냐? 기특하구나. 남편인 나도 잊고 있었는데... 나도 요즘 장희빈은 싫증나고 앙탈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구나. 남인들과 장희빈 말만 듣고 정실 왕후를 궁궐 밖으로 쫓아 낸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 네가 동이라고 했느냐? 여봐라, 나 오늘 마음씨 최고로 예쁜 최 무수리와 술 한잔하고 밤새다 가겠다. 경호원들은 그만 퇴근하거라.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궁궐에서 물을 긷던 시녀 동이. 이름 최복순. 간단히 최 무수리가 우연히 하룻밤의 동침으로 아들을 낳았고 숙빈이 되었고, 그 아들이 21대 영조가 되었으니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그 밤에 정말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리하여 폐위되었던 인현왕후가 복위되었다. 남인과 장희빈이 최무수리인 최숙빈을 독살하려 했다는 독살설이 퍼졌다. 이를 빌미로 남인과 장희빈 일파는 초죽음이 되었다. 남인은 몰락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으니 이것이 갑술환국이었다(1694년). 숙종 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의 왕위계승을 지지했던 소론과 최무수리의 아들 영조를 지지한 노론 사이에 나타난 정쟁으로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노론은 영조의 탕평책을 놓고 다시 시파와 벽파로 나누어졌다. 붕당의 끝은 끝이 없었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대북 소북 노론 소론 시파 벽파 10개의 당이 있었으니 요즘과는 비교가 안되었다.그림: 붕당계보도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