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유주사~~ 감나무 밭에 풀 언제 베나?” 어제만 세 번 들은 말인데, 물론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은 아닙니다. “쯧쯧쯧... 농사라는 게 심어놓으면 되는 줄 알고...” “이 사람아~ 실없이 웃음만 흘리고 다니지 말고 밭에 풀이나 좀 베지 그래~~” 감나무보다 더 무성한 잡초를 보다 못해 얼른 베라고 재촉하는 말인 것입니다. 오늘은 제초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며칠째 찔끔찔끔 해오다가 이웃 어르신들이 자꾸 눈치를 주는 바람에 오늘은 새벽부터 작정하고 사납게 달려들었습니다. 일초에 수백 번인지 수천 번인지 모르겠지만 쇠로된 칼날이 덜덜 떨며 고속 회전하는 예초기가 고백컨대 나는 무섭습니다. 안전모를 쓰고 조심해서 한다고는 하지만 하다보면 예초기 날이 돌을 날려 팔다리에 피멍이 들기도 하고 땅벌을 건드리는 바람에 벌떼 공격을 받고 눈탱이가 개구리 왕눈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용할 때마다 긴장이 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때가 되면 예초기 메고 돌격 앞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풀을 베는데 벌써 씨를 퍼트리는 넘들이 있습니다. 내가 돌격 앞으로 하면 할수록 잡초 씨앗만 더 퍼트려주는 꼴이 되어 한심합니다. 가벼운 바람이라도 한번 불면 풀씨로 완전 덮어버릴 기세입니다. 씨를 맺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한 응분의 대가를 받는 거지요.그런데 해마다 이맘 때 풀을 치면 헛골에 숨어있는 고라니를 만나곤 합니다. 풀이 무성하다 보니 여느 깊은 골짜기 못지않게 좋은 서식지라고 판단하고 떡하니 안방차지 하고 있는 고라니를 만나게 되는데, 이 넘들은 예초기 날이 코앞에 올 때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풀쩍 뛰어 올라 놀래킵니다. 오늘도 풀을 베면서 혹 이 넘들이 나타날까봐 긴장 했는데 뜻밖에 어린 새끼를 만났습니다. 어미는 줄행랑을 놓았는지 어디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기 고라니 두 마리가 헛골에 몸을 감추고 있네요.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 뻔 했는데 참말로 운이 좋았습니다.“야~ 숨지마~ 다 들켰어~~ 이리 나와 봐~ 얼굴 좀 보자~~” 얼굴을 보니 태어난 지 사나흘 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어린 것입니다. 툭툭 건드려 걸음마를 시켜보니 아직 탯줄이 대롱대롱 달려 있는 것이 불안하게 다리를 후들거리며 걸음마를 합니다. ‘어때요~ 아쩌씨~ 나 잘 걸어요? 근데 엄마가 여기는 먹을 거도 많고 관심농부가 풀도 안 베고 안전하다 했는데 어케 된 거에요?’ 엄마는 퐁퐁 뛰어 달아났지만 아기는 자기방어기술이 있어 굳이 달아나지 않아도 됩니다. 아기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마법을 걸면, 올 봄 고라니 땀시 콩밭이 작살난 종만이 영감님도 마치 애완견 새끼라도 보듯 착한 얼굴이 되어 버리고 손꾸락으로 콕콕 찌르며 “살려 줘~ 어미 찾아 줘어~”하십니다. 아기의 눈빛에서 나오는 이 특수파장의 방어기전에는 헤치기는커녕 엄마를 다시 잘 만나게 될까 걱정해줄 정도로, 미움도 원망도 모두 미소와 사랑으로 바꾸어 버리는 특별한 거시기가 있으니까요.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