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겹접시 꽃이 피었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가는 우리 집 앞에 겹접시꽃이 군락을 이루었는데, 흔히 보는 접시꽃과는 달리 꽃잎이 겹겹이 피어 느낌이 완전 새롭다. 꽃이 풍성하게 핀 모습이 마치 모란을 보는 듯한데 색깔도 분홍, 노랑, 하양, 빨강, 미색, 흑색까지 다양해서 지나가는 둘레꾼들의 사진 촬영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다. 얼굴 모르는 여행객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사진까지 찍어가는 것을 보면 꽃을 심고 가꾼 주인으로서는 참으로 흐뭇하다. 특히 쌍꺼풀이 예쁜 여자가 셀카라도 찍으면 한번 더 유심히 쳐다보게 되는데, 이유가 있다. 지난 해 겹접시꽃이 필 때 사진을 찍어서 카스 채널 ‘지리산농부’에 올렸더니 댓글이 엄청 달렸는데, 좋다 말았던 것이 ‘꽃이 참 예뻐요’까지는 좋았는데, 자기도 꼭 한번 심어보고 싶으니 씨앗을 보내 달라는 댓글이 많았다. 보내달라는 사람이 한 두 명이면 뭐 어려울 거 없다. 근데 한 둘이 아니고 대 여섯 명도 아니다. ‘네~그럴께요~ 씨앗이 여물면 보내 드릴께요~’하고 답글을 달면 신청자가 수십 명이 될 기세였다. 예전에 화초 동호회에서 씨앗 나눔을 많이 해 보았지만 수십 명에게 씨앗 보내주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씨앗을 채종해서 작은 봉투에 나눠 담고 편지봉투에 넣어 주소 쓰고 우표 붙여 발송하는 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게 생업이라면 휘파람 불며 하겠지만 이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든 거절할 수가 없어 나눔을 했는데, 단 조건을 달았다. 유니세프 후원금을 성의껏 낸 사람에게 씨앗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그래도 30여명이 신청하여 가을에 잘 여문 씨앗을 정성껏 봉투에 담아 우편 발송했다. 일 년이 지났다. 지난 해 씨앗을 나눔 받아 가을 발아에 성공한 사람은 새싹이 월동했을 것이고 봄 지나고 유월, 이제는 꽃이 보기 좋게 피었을 것이다. 그래서 씨앗 나눔했던 카스채널 ‘지리산농부‘에 겹접시꽃 나눔 받은 친구님들 집에 꽃이 잘 피었는지 궁금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과연 강원도 횡성에 사는 한 친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뜻밖에도 겹꽃이 아닌 홑꽃이 피어서 속상하다고 한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사진을 보내 보라고 했더니 사진을 보내왔는데 정말 꽃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홑 접시꽃이었다. 세상에~ 우째 이런일이~ 분명 겹접시꽃 씨앗을 보냈는데 홑접시꽃이 피었다면 지난 해 씨앗 나눔 받은 사람들 모두 홑꽃이 핀다는 말인데... 나는 놀랍고 창피해서 SNS상에서 잠적하려고 하다가 용기를 내어 정중하게 공개 사과의 글을 올렸다. 쌍꺼풀 수술하고 짠하고 반창고 때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홑꺼풀이면 얼마나 슬프고 황당할까? 아무리 내 눈에는 홑꺼풀도 예뻐 보이기만 하지만 말이다. f1 자가 채종해서 심은 것이 모두 원종 홑이 나왔으니, 우리 집 마당에 피어있는 겹접시꽃은 모두 교잡종인 모양이다. 쉽게 말해서 쌍꺼풀에 반해서 결혼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홑꺼풀이면 그 쌍꺼풀은 백프로 거시기 한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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