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4일 오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도천마을 한 폐가 앞에 80 고령의 노인이 회한의 눈으로 폐가를 바라봤다. 이곳은 일명 남도부라 불리는 하준수의 생가. 남도부는 한국 전쟁을 전후해 조선인민유격대 즉 빨치산 지휘관을 이르는 이름으로 하준수 보다는 남도부로 더욱 알려져 있다. 고령의 노인은 하준수 사령관과 함께 4년간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던 구연철 옹으로 처음으로 생가와 묘소를 참배했다. 이들 일행은 구연철 선생과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부친의 흔적을 쫓아온 박현희·정희숙씨, 그리고 광주·전남 민주화운동동지회 회원, 소설가 등 10여명이 함께 남도부 하준수의 생가를 찾았다. 구연철 선생은 “나는 태백산부대에서 활동했는데 이후 사령관님과 4년간 함께 활동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방치되어 허물어져 가는 생가는 빨치산 활동으로 탄압받은 집안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몇 되지 않는 생존 빨치산 중 1인인 구연철 선생은 1950년 8월부터 울산 신불산 사령부에서 하준수 선생과 함께 활동한 인물이다. 이날 함께한 박현희씨는 부친 박판수씨는 서상 출신으로 당시 남로당 서부경남 위원장으로, 정희숙씨의 부친 정철상씨는 지곡 출신으로 역시 부산시당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가족들은 이후 연좌죄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참여한 이들은 “하루 빨리 생가를 복원해 박물관 등으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석꾼 집안인 하준수의 집은 원래 기와집 열 두 채로 이뤄진, 450평 규모의 큰 집이었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재는 안채와 부속건물 등 2채가 남아 있다. 생가를 둘러본 일행은 인근에 위치한 묘소를 참배하며 하준수 사령관을 기렸다. 구연철 선생은 “아직도 저에게는 영원한 사령관이시다. 남도부 사령관은 감자를 즐겨 드셨다. 그래서 이번에 감자를 삶아 왔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한 일행은 “그때 그 활동이 옳았든 옳지 않았든 간에 사심 없이 행복하고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었다. 남도부 하준수 사령관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일행은 오는 10월 정철상 선생의 기일에 다시 모여 하준수 생가 복원과 함께 묘소 정비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뜻을 모아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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