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6월 12일은 뭘까요? 한국의 공휴일인 6월6일은 현충일이지만 필리핀의 공휴일인 6월12일은 독립기념일이다. 독립운동지도자인 에밀리오 아기날도 장군이 1898년 6월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하면서 만든 날이다. 이 달에 필리핀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필리핀의 가슴 아픈 외침 역사를 살펴보면, 16세기 유럽에서 향료 부족 현상이 일어났을 때, 포르투갈 탐험가인 마젤란이 향료를 찾아 세계여행을 떠날 것을 스페인 국왕에게 제안하여, 1518년 드디어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1521년 필리핀에 도착한 마젤란은 스페인을 위해 육지를 점령, 필리핀을 스페인 영토라 주장하며 각 부족장에게 복종할 것을 명령 하지만 막탄섬의 부족장인 ‘라푸라푸’가 요구에 순응하지 않자 마젤란은 그를 죽이기 위해 막탄섬을 침략하게 된다. 하지만 부족을 지키기 위해 대항하는 부족들에게 패배하게 된다. 후퇴하던 마젤란은 라푸라푸에게 포위당하여 사망하게 된다. 스페인의 침략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543년 빌라로보스가 필리핀에 도착하여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나스 국명을 명명하였다. 그 후 레가스피가 보홀섬에 도착하여 세부에 스페인 항국을 건설, 1571년에는 민다나오와 술루해를 제외한 필리핀 전부를 장악하게 되면서부터 스페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마젤란이 사망한 지 44년 후인 1565년부터 스페인이 필리핀을 최초 식민지로 330년간 통치하였다. 이후 에스파냐 사람들에 의해 카톨릭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전국에 교회, 관청이 있는 소도시를 단위로 한 지배체제가 만들어진다. 부족 우두머리는 에스파냐 지배자들과 원주민 사이의 중간 지배층을 형성한다. 에스파냐의 식민지정책은 필리핀의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어렵게 만들었고, 주민들은 지배자들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세금, 부역(국가 사업을 위해 국민들이 보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을 제공하는 일 이외에는 예전처럼 자급적 경제생활을 한다. 에스파냐는 필리핀과 멕시코를 오가는 갤리언선을 이용해 무역했는데 이것이 한계에 부딪치자, 19세기 초에 자유무역 정책이 채택되고 1834년 마닐라항이 개항된다. 이와 함께 18세기 말에 시작된 설탕·담배·마닐라삼(여기서 섬유를 뽑아 밧줄, 그물 등을 만든다.) 등 수출용 상품작물의 재배는 수에즈 운하 개통 덕분에 급격히 발전하였고, 자급적 경제는 상품경제로 전환된다. 1860년 스페인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필리핀도 이에 맞춰 대 스페인 저항운동을 펼쳐 나가게 된다. 최초의 전투는 ‘카티푸난’이라는 독립운동 단체가 스페인군 무기고를 습격하게 되어 발생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스페인 군에게 참패하였다. 필리핀은 혁명에 성공하기 위하여 미국에 도움을 청하였다. 미국도 이를 승낙하여 필리핀을 도와주기로 약속하였다. 1898년 2월25일 당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쿠바가 독립혁명을 일으켜 미국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쿠바를 지원하러 갔으나 미국의 전함이 스페인군에 의하여 격침당해 260여 명의 미군이 사망하여 미국의 스페인에 대한 감정은 적대적이었다. 미군은 바다에서 계속되는 승리를 이끌었으며 필리핀은 육지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스페인은 필리핀 몰래 미국에게 항복할 것을 밝히고 1898년 8월13일 각본에 짜여진 전투를 치른 다음 항복하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미국에게 항복한 것이지 필리핀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었다. 1898년 6월12일 필리핀의 에밀리오 아기날도 장군은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였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898년12월10일 스페인과 미국은 파리에서 만나 ‘파리조약’에 서명을 하였고, 미국은 스페인에게 필리핀을 양도받는 조건으로 미화 2천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스페인의 통치시대가 끝나자마자 필리핀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02년까지 미국에 대한 저항운동이 계속 되었으나, 미국은 필리핀이 자체적으로 통치를 할 수 있게 되면 필리핀을 떠나겠다고 약속 하였으며 필리핀도 이를 수락 하였다.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는 동안 필리핀에 많은 경제 정책 및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러나 1941년 필리핀에 불행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1941년12월8일 새벽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는 뉴스가 퍼지고 난 몇 시간 후 일본의 폭격기가 필리핀 상공에 나타나 미군의 클라크 공군기지를 공습, 파괴하였다. 극동 주둔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도 이를 저지하지 못하였다. 1942년 3월17일 맥아더 장군은 호주로 철수하면서 “I SHALL RETURN”이라는 말을 남기며 철수한다. 필리핀은 끝까지 일본에 대항하며 싸웠으나 기아와 부상에 지쳐 일본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1944년10월 20일 미 해방군이 650척의 전함과 4개 사단의 병력으로 레이테에 상륙한다. 맥아더 장군은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켰다. 1945년 마닐라가 자유를 되찾았고 1945년7월5일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의 해방을 선포하였고, 그리하여 1946년7월4일 필리핀은 완전한 독립을 하게 된다. 1962년까지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하고 나중에 독립운동자들이 주장을 내새워서 6월12일을 독립기념으로 지정해서 현재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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