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풀잎이 초여름 햇살아래 초록으로 물들고 비 맞은 잎새들이 유들유들 잘 자라 더 짙은 진초록으로 변하는 산야가 신비롭다. 철따라 피어나는 형형색색 꽃과 나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편안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름은 모르지만 마을 어귀에 있는 아주 오래된 거목을 바라보며 나무를 알아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늘 한자리에 변함없이 서있는 큰 나무들을 바라보면 고맙고 감사함이 느껴진다. 어느 누구의 비밀도 마음의 고뇌도 다 품어주고 다독여 줄 것만 같은 나무... 그래서 누군가 힘들고 지치면 나무아래 앉아 살며시 눈을 감고 속마음을 삭히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의 흔들림에 가슴속 한켠을 비우는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고 또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해준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로 보면 꽃과 나무로 연관된 축제가 많다.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하여 얼마나 힘든 여정을 떠나는지 모른다. 차가 밀려 고생해도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꽃은 오묘한 치유의 능력을 갖고 급한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해맑은 어린아이 마음처럼 순박하게 만든다. 생명의 시작은 삭막한 겨우내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신기루처럼 굶주린 사람들의 감성을 깨운다.
우리가 나무를 알기는 참 어렵다. 나무를 알려면 나무의 사계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하루에도 키 높이만큼 자라나는 대나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수목도 있고 더디지만 나이테를 이루며 천년을 그 자리를 지키는 은행나무도 있다.
나무는 자연의 사물 중 인류문화의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 걸쳐 생명과 풍요로 상징을 갖고 영적인 존재처럼 마을의 수호신이 되기도 한다. 나무는 뿌리가 지하에 얽혀 뻗치고 나뭇가지가 하늘로 뻗쳐서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우주축이라 하겠다.
함양을 알리는 지킴이 역할을 하는 상림숲 또한 천년동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살아온 나무들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나 향토성을 갖는 소중한 존재로서 마땅히 예우를 받아야 하며 사랑을 듬뿍 줘야 할 대상이다. 상림의 유명세에 걸맞게 지역 내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연계하여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하겠다.
함양초등학교내에 홀로 우뚝 서있는 500년 된 군목인 느티나무가 위엄을 잘 지켜주고 있다.
서하에는 은행나무 한그루에 은행마을이라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나무와 마을과 오래도록 함께한 역사를 알 수 있다.
휴천면 목현리 구송은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는지 모른다. 밑동에서부터 나무줄기가 9갈래로 갈라져 구송이라 하는데 현재는 2개는 죽고 7개의 가지가 우산처럼 펼쳐져 있다. 특히 목현리 구송은 소나무의 종류 중 흔치않은 반송인지라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문화적 자료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무는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며 더울 땐 그늘이 되어주고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은 편안하게 쉴 수 있게 자리를 내어 준다. 소중한 나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함부로 오래된 나무들을 삭둑 베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어느 날 언덕에 서있는 아름드리 능수벚나무 몇 그루가 처참하게 토막 쳐진걸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봄이면 길게 늘어진 하얀 능수벚꽃이 낭만을 더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추억을 나 말고도 그곳을 지나다니는 누군가도 기억하고 아쉬워 할거라 생각한다.
공사하느라 파헤쳐진 나무들이 말라가고 죽어가는 모습들을 보면 나무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먹먹하다. 물론 최선을 다하고 사정이 있겠지만, 한번 더 신중하게 나무의 가치를 생각하고 옮겨심기가 잘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나무의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읽을 줄 알아야 하겠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치유의 숲으로 거듭나는 나무들과 상생하며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 항상 큰 나무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이도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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