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해마다 그렇듯이 양파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양파밭을 지나노라면 유독 꼿꼿이 서 있는 씨 맺힌 꽃 양파를 많이 보게 된다. 날씨 탓인지, 일찍 심어서 그런지, 씨앗이 문제인지는 어설픈 농사꾼 흉내만 내는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쓸모없이 버려야 하는 것인지는 안다. 양파 안에 꽃대가 강하고 질겨서 먹을 수 없다. 5월 중하순이 되면 양파는 드러눕는다. 쓰러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러면서 알뿌리가 영근다. 결국 양파순은 쓰러져야 하고, 시들어야 하고, 말라야 한다. 자신아 영양분을 다 가지지 않는다. 자신을 버리고 알뿌리에게 양보한다. 자연의 이치인가? 꽃피고 씨 맺힌 양파는 어떻게 될까? 골칫거리인 것은 분명하다. 어머니는 보이는 것마다 뽑아서 낫질을 해서 버리신다. 포기한 것인지 그대로 둔 밭도 있다. 대는 서있는데 꽃을 잘라 버린 밭도 있다. 미리 뽑아서 알만 챙기는 농부도 있다. 무엇에 쓸 것인가? 양파즙도 맛이 없다고 한다. 교만한(?) 양파의 최후는 결국 처단이 맞는 것 같다. 양파를 보면서 겸손을 생각한다. 교만하면 자기 과시형 사람이 되기 싶다. 자기 과시형 사람은 지배욕이 강하다. 지배욕이 강한 사람은 공격적이다. 공격적인 사람에게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양보도 어렵고, 배려도 어렵다. 거칠고 소란하고 어지럽다. 사람은 본성처럼 높아지려고 하며, 가지려고 하며, 군림하려고 한다. 요즘 특히 어른이 없는 시대요, 저마다 왕이 되려는 시대인 것 같다. 철저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의 구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비겁하지 아니한가? 성경에 사사시대에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고 하였다. 그 사사 시대에 죄악이 확장되고 습성화 되어 전쟁이 반복되었고, 전쟁 속에 고통과 눈물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왕 삼으려는 무리들에게서는 도망하다시피 그 자리를 피하셨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섬기셨으며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다. 예수님의 길은 겸손이셨다. 왕이 되려 하지 않으셨다. 왕이 되려하지 말자. 왕의 자리를 거부하자.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자. 왕의 자리에서 탈출하자. 그러면서 왜 서운하지? 그러면서 왜 배고프지? 그러면서 낮음이 싫지? 그러면서 왜 섬기지 못하지? 그러면서 왜? 왜? 왜? 언제쯤 나는 낮아짐과, 종됨에 익숙해질까? 겸손이 체질화 될까? 양파 앞에서도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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