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월령가에 의하면 유월은 여름의 두 번째 달로 중하(仲夏)라 불린다. 이때는 남풍이 때맞춰 불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밤사이에 보리밭이 누런빛이 나겠으니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타작할 장소를 마련하라는 구절이 오월령에 보인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보리를 모두 베어낸 빈터에 벼도 심고 밭갈이를 할 수 있으니 이 무렵은 농번기 최고의 절정인 셈이다. 오죽하면 불 때던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든다고 하였을까. 하지만 이때는 바쁜데 비례하여 배고픔이 극에 달하는 시기였다고 한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벼는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수확을 하지 못한 때라 푸성귀를 잔뜩 넣고 멀겋게 끓이는 죽으로 연명하면서 일을 했던 시기라 하였다. 그러다 보리타작을 하게 되면 보리밥 실하게 하여 때맞춰 풍성하게 자란 상추 위에 넉넉히 얹어 상추쌈을 싸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타작을 하여 햇보리가 나올 즈음의 상추는 풀을 먹인 셔츠의 깃처럼 빳빳하게 힘이 오른다. 그러면 나는 보리밥을 실하게 하고 상추를 한 바가지 씻어 놓고 앉아 쌈을 싼다. 된장으로 간을 하고 크게 한 쌈 싸서 입이 미어지게 먹으면 세상 부러울 일이 없다. 열무김치 한 사발 같이 있으면 왕후장상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기억 속의 유월은 오로지 배고픔의 연속선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들로만 가득하다. 산야에 흔하디흔한 나물이라도 넉넉하게 넣고 끓인 죽을 먹던 오월은 가고, 아직 농사로 변변하게 거둘만한 것이 없는 때라 보리의 수확만을 기다리는 유월은 희멀건 나물죽이나마 하루 세 끼를 온전하게 먹을 수 없었던 때여서 그랬나보다. 어른들은 그때를 보릿고개라고 하셨지만 어린 나는 그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동네의 조금 머리 큰 아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풋보리를 잘라다가 불을 놓아 구워먹는 이른바 보리서리를 하고 다니기에 여념이 없던 때이기도 하였다. 철없이 뛰고 놀기만 할 때였지만 늘 말썽만 피운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보리수확이 끝난 텅 빈 들판을 돌아다니며 키 작은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이삭들을 주워가져다가 마당에 산처럼 쌓아 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들어가니 보리이삭으로 쌓은 산은 없어지고 어머니가 바가지 하나 가득 보리튀밥을 담아주셨다. 달지 않은 조리퐁 같은 느낌의 그것이 어린 내가 품을 팔아 얻어진 최초의 간식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은 그때를 생각하고 가게에서 파는 비슷한 과자를 사들고 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식용하는 보리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눈밭에서 지내고 봄을 지나 여름에 수확을 하므로 그 성질이 매우 서늘하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철에 해먹기 좋은 곡식으로 독은 없으며 단맛을 가지고 있고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한다. 쌀에 비해 섬유질이 다섯 배나 많으며 그 섬유질은 소화율은 떨어지지만 대장의 연동운동을 돕는 작용을 하므로 장위(腸胃)를 튼튼하게 한다. 또한 혈당을 내려주고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며 대장암을 예방하는 유익한 작용을 한다. 보리를 볶아서 끓이는 보리차도 역시 그 서늘한 성질로 몸의 열을 내려주므로 여름의 무더위를 이기게 해주고 식욕을 증진시켜준다. 보리를 발아시켜 만드는 맥아(엿기름)도 역시 보리와 성질이 비슷하여 소화가 잘 안 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배에 가스가 차거나 오심구토, 설사 또는 젖몸살을 앓을 때 효과가 있다. 보리는 쌀과 익는 속도가 다르므로 미리 넉넉히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때때마다 불린 쌀과 함께 밥을 하면 편하다. 하지감자도 제철이므로 감자 한 개 같이 넣고 밥을 하면 감자의 단맛이 밥에 어우러져 더욱 맛있는 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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