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7일 서울 강남역 번화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참변을 당한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국화꽃과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쪽지글로 가득했습니다. 이 사건이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냐’, 아니면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냐를 두고 설왕설래되었지만, 일단 경찰에서는 피해망상과 환청 등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의 범행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단순히 일회성의 범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세태 신조어인 ‘헬조선’, ‘갑질 논란’,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 등에서 나타나듯이,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비롯된, 일련의 수많은 사건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사회 약자에 대한 범죄에 사회 안전망이 허술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피안적인 ‘여성 혐오’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최근 들어 계층, 성별, 이념, 지역, 학벌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수많은 갈등이 복합적으로 증폭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통합과 화합의 노력은 미흡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구조적 병폐들이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현상에만 국한하여 구조적인 유발 요인을 회피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너의 탓’의 양분법으로 사회 갈등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왔습니다. 기득권층들은 이익 집단끼리 견고히 구축하여 계층 이동을 차단함으로써 선민의식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군림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강남역 화장실 ‘묻지마 살인 사건’을 ‘여성 혐오’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우리 사회 병폐의 뿌리를 간과할 소지가 있습니다. ‘여성 혐오’는 서로를 질시하고 남 탓으로 돌리는 우리 사회의 풍조에 편승하여 성별 간 갈등의 골만 깊게 할 것입니다. 2013년 대통령 직속으로 발족한 ‘국민대통합위원회’의 백서에는 ‘사회갈등 심화와 국민통합의 필요성’이 우리의 당면 과제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등 국내 대표적 정치·사회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 진단’ 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사회 불안 심리는 세계 보편적 현상이지만, 외길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그 양상이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특히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깊어지고 개인 노력만으로 성공이 어려워지면서 성공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의 진원지는 ‘빈부 격차’라고 합니다.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가 미흡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이 갈등과 질시의 사회 풍토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빈부 격차의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으로 사회적 약자의 좌절이 ‘묻지마식’의 극단적인 ‘분노 범죄’로 분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경찰청의 분노·충동 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에 의하면, 끔찍한 ‘사회증오범죄’(사회에 대한 원망을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하듯 범행하는 것)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발적 살인 비율은 30% 전후였으나 지난해에는 갑작스런 분노와 충동 등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이 전체 살인 사건의 39%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국가와 사회 차원의 양극화 해소와 불안과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분노 범죄 감소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빈곤층과 소외계층이 일자리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등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합니다. 동시에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으로 나눔과 배려, 화합과 상생의 사회분위기를 이끌어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기성 사회구성간의 갈등과 질시, 과도한 생존 경쟁의 사회 풍토에서 벗어나, 더불어 상생하여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 삶을 펼쳐가기를 염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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