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 향기가 그윽한 봄날의 교정에, 여중생들의 교내체육대회 함성이 하루 종일 신록처럼 나부끼고 있습니다. 생기발랄한 아이들의 운동 시합과 응원, 춤과 웃음이 푸른 물결처럼 어우러진 축제입니다. 벌써 어른처럼 덩치도 마음도 성숙해진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청춘은 티 없이 맑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이번 체육대회에서는 교사들은 체육행사 지원과 도우미 역할만 해보라는 교장선생님의 당부가 있어, 학생자치회에서 체육대회를 전적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교사들이 체육행사를 기획, 운영하면서 심판도 보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종목 선정에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승부욕은 대단하기에 교사의 심판 판정에 집단적 항의와 불복으로 교사들이 곤욕을 치르는 날이 체육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학생자치회에서 이틀간의 시합 종목을 선정하고 대진표 및 심판진을 자율적으로 구성한다고 하니, 담당 교사들은 내심 우려되는 바가 컸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너무도 자율적으로 체육행사를 잘 운영하는 것을 보고 우리 교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휴일에도 아이들은 학교에 나와서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시합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과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였는데, 체육대회 날에는 1,2,3학년이 조별로 일치단결하여 치열한 응원 속에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판정에 대한 시비가 종종 발생하여 시합이 지연되기도 하였지만, 심판진 학생회와 조장간의 협의로 갈등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이 너무도 대견스러웠습니다. 승부욕을 주체할 수 없어, 패배하여 우는 친구를 부둥켜안고 격려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인간성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또래아이들 나름대로의 원칙과 규칙, 문제해결의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또래아이들 간 공감하는 삶의 방식을 체득하면서 성장하고 있음에도,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어른들의 눈높이와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재단하거나 과보호 내지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학교도 가르치는 기능에서 탈피하여,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과 협력하면서 더불어 꿈을 키워가는, 삶의 자생력을 키우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배우고 익히는 삶의 공간이자, 삶을 터득하는 생활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는 또래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체험학습, 체육대회, 축제 등 아이들이 생동하는 삶의 텃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학교 현장에는 또래아이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기에, 학교의 역할에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또한 입시교육과 한줄 세우기 학력 경쟁이 얼마나 많은 우리 아이들을 힘들고 병들게 하는지, 그리고 경쟁에 뒤떨어진 아이들이 얼마나 절망감과 열등감으로 낙인 되어 스스로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지,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내 아이의 우등에만 안도하고, 낙오된 아이들을 보듬어주지 못할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이 부메랑처럼 언젠가는 사회악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학창시절의 천진난만하던 꿈과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천진난만한 꿈을 꾸게 하고, 또래아이들과의 우정을 꽃피우게 해야 합니다. 학교는 어른들이 원하는 맞춤형 위탁소가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한 요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소질을 계발하여 미래 삶의 역량을 키우는, 행복한 배움터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더불어 꿈꿀 때, 아이들의 미래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기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소수의 가진 자가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게 되어, 우리 아이들의 세상은 생존경쟁의 사막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경제 논리와 입시경쟁, 취업전쟁 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교육의 본질도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교육과 학교를 어른들이 바로 세워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