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꽃나무 가꾸며 욕심내는 사람은 어리석다. 마음에 드는 꽃나무와 화초 두어 가지 해가 잘 드는 곳에 심어 정성껏 가꾸고 꽃이 피면 꽃을 즐기고 꽃이 지면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해야지, 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원은 자아의 은유인 것이다.
내가 십 수년 전 산골마을에 집을 짓고 처음으로 심은 꽃나무는 함양 장에서 사다 심은 덩굴장미 세 그루였다. 해가 잘 드는 동향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장미 세 그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심었더니 그 다음 해부터는 빨강, 노랑, 분홍 장미가 제법 덩굴이 지고 어울려 볼만했다. 장미는 심어만 놓으면 손 갈 일이 별로 없고 알아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꽃이 피고 지니 정원수로 장미만한 것도 없는 것 같아 다음 해에는 장미를 다섯 그루 더 구입해서 심었다. 예전에는 소위 국민장미라고 불리는 빨간 장미 일색이었지만, 요즘 나오는 장미는 색상뿐만 아니라 화형 및 수형도 아주 다양하다. 내친 김에 나는 집 아래 언덕에 찔레덤불처럼 무성하게 자라는 덤불형 장미를 네그루 더 사다 심고, 집 위 언덕도 장미가 피면 그림이 될 거 같아 키가 적당하고 꽃은 큼직하다는 장미 다섯 그루를 더 사다 심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우리 집이 아예 장미로 둘러싸이면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장미를 열 그루 더 구입하여 모과나무 옆에도 심고 돌담 아래에도 심었는데, 심을 자리가 없으면 잔디마당을 파내고라도 심었다.
장미는 알아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일거리가 별로 없지만 지나치게 풍성해지는 가지는 가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장미는 꽃이 많이 필 때는 꽃의 무게로 허리가 꺾이기도 하고 비가 많이 내리면 쓰러지기도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왕성한 가지는 적당히 전정해 줘야 하고, 특히 덩굴장미일 경우에는 중간 중간 잘 고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장미가 아무리 알아서 잘 자란다지만 탄소동화 작용을 하는 식물인 만큼 일정시간 해가 드는 곳에 심어야 꽃이 풍성하게 피므로 해가 잘 안 드는 곳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꽃이 필 시기에는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줘야 화색이 좋은데 특히 수분이 금세 증발해버리는 여름철에는 수분공급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은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만 주면 된다. 모든 식물이 그러하듯 꽃이 필 시기에 퇴비를 주는 것도 향기로운 장미를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요즘 장미는 원예용으로 개량이 되어 병충해에 강한 편이지만, 벌레와 균들도 면역성이 센 놈들이 생겨 적절한 시기에 방제는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미가 피었는데 징그러운 벌레들이 우글거린다면 별로 보기가 안 좋고 병이 들어 이파리가 노랗게 마르고 흑반점이 얼룩덜룩하면 끔직해 보이기 십상이다. 방제는 병충해가 많이 발생하는 여름 우기에 서너 차례만 해주면 되는데 살충제와 살균제를 반반씩 혼합하여 해 준다. 요즘 장미는 봄에 한번만 피는 것이 아니고 늦은 가을까지 꾸준히 피고 지기 때문에 한번 심어놓으면 꾸준히 꽃을 즐길 수 있다. 단, 꽃이 진 것은 바로바로 제거해 줘야 새로운 꽃이 피기 때문에 전지가위를 평소에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시든 꽃대를 잘라줄 필요는 있다.
오월이 되니 집 주변에 장미꽃이 피기 시작이다. 두세 그루 심고 만족할 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원에 꽃나무 가꾸는 것을 사업하듯 있는 욕심 없는 욕심 다 부려가며 하는 바람에 그 후유증으로 농부는 선구불장증에 걸렸다. 선천성 구제불능성 장미 증후군이라는 이 바이러스는 이름이 긴 병들이 대개 그렇듯 치료가 어렵다 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바쁜 영농 철에 농부가 장미 꽃 앞에서 괜시리 왔다리갔다리 하며 희죽 거리는 것인데, 일을 안 해도 인생이 장미 빛으로 될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 때문에 약도 없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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