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면사무소에 공공근로를 신청하였습니다. 자녀 3명을 학원도 보내고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겨울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일단 신청서를 작성하여 접수시켰습니다. 며칠 뒤에 연락이 왔습니다. 농기계임대사업소에 자리가 있는데 한번 해 보겠냐고 했습니다. 나는 농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기껏 경운기를 운전하는 정도라고 하니까 크게 상관없다고 하기에 얼떨결에 하게 되었습니다. 기계를 정비하는 일은 담당직원들이 하고 저는 비교적 조작이 간단한 농기계를 임대하러 온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빌려 간 사람들이 반납하면 세척해서 제 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철이 지나고 봄이 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임대사업소를 방문하여 농기계를 빌려갔습니다. 미니 굴삭기, 볏짚 결속기, 퇴비살포기와 같은 제법 큰 농기계부터 소형관리기와 콩 심는 기계까지 다양한 농기계들이 매일 분주하게 나가고 들어오고 하였습니다. 농기계가 대부분 고가이기 때문에 임대사업소가 농민들에게 유용한 참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빌려 가시는 분들도 1년에 한두 번 쓰는데 비싼 기계를 구입하지 않고 이렇게 임대할 수 있어서 좋다고들 하셨습니다. 특별히 서민들이나 귀농하신 분들에게는 농기계임대사업소가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주요 업무는 임대해 가서 사용하고 반납한 농기계를 세척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로 흙이 범벅이 된 농기계를 세척하는 일이 조금 신기하면서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용하고 반납하는 농기계가 많아지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규정에는 농기계를 사용한 사람이 사용 후 세척을 해서 반납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깨끗하게 해서 반납을 하면 임대사업소 세척장에서는 미진한 부분만 마무리를 하고 물기를 말려서 창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척장치가 없어서 세척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임대사업소 세척장에서 사용자가 어느 정도 세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농사철이라 바쁘기도 하고 또 세척할 수 있는 곳이 한곳 밖에 없기 때문에 임대사업소에서 대부분 세척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그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가끔씩 청소를 해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하루는 한 사람이 농기계를 사용하고 반납하러 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사용한 농기계를 정말 깨끗하게 씻어 가지고 왔습니다. 더 이상 손을 보지 않고 바로 있던 자리에 들여 놓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세척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와! 농기계를 너무나 깨끗하게 씻어 오셨네요” 하니까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건 기본이지! 남의 농기계를 가져다 사용했으면 깨끗하게 씻어다 주는 것은 기본 아닌가? 안 그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 “그건 기본이지, 기본인데,,, 기본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기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법으로 정해 놓기 이전에 이미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자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 기본을 스스로 지켜나가지 않으면 기본 아닌 것이 기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교통신호를 아예 무시하면서 그것을 당연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럽이나 선진국을 다녀 온 사람들이 그 나라의 국민들은 기본이 되어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들었습니다. 기본이 되어 있는 가정과 사회, 국가는 안정을 이루고 그 안정위에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들을 위해 함양군 농업기술센테에서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운영하며 보이지 않는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음을 공공근로를 통해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농기계를 세척할 장치가 집에 없어서 풀밭 위에서 농기계를 운행하여 흙을 털어내고 반납하러왔다는 어느 이용자의 말이 가슴 한 곳에 지금도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임대해간 기계를 반납하며 “오늘 농기계 정말 잘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따뜻한 감사의 말 한 마디 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관계자들은 위로와 힘을 얻지 않을까요? 이것도 어쩌면 또 하나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마다 기본이 지켜진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더 따뜻해 질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다녀간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한국 사람들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기본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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