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하지만 결코 오월 봄비라고 할 수 없는 비가 내린다. 엄천강이 많이 불었고 바람도 태풍 급이다. 집주변 비설거지 한 번 더 해놓고는 읍에 있는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허리가 시원찮아져 사우나를 자주 하는데 오늘따라 목욕탕에 사람이 북적댔다. 평일인데, 장날도 아닌데 숭늉에 밥 말은 것처럼 탕 안에 사람이 많다. 비가 오니 나처럼 허리 부실한 농부들이 담그러 왔는가 싶었는데, 왁자지껄 분위기를 보니 한 마을에서 온 단체손님이다. 시골에는 이런 단체목욕문화(?)가 있다. 마을 공동체에서 날을 잡아 단체로 목욕을 하고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는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집에 샤워 시설이 변변치 않은 집이 많고, 또 독거노인 가정이 많아 한 번씩 마을에서 단체로 때 빼고 광내고 밥도 먹는 것이다. 아래는 내가 귀농하고 몇 해 되지 않았을 때 쓴 일기다.오늘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는데 그냥 봄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읍에 있는 목욕탕에 어르신들을 모셔 드리기 위해 마을에 있는 차량을 징발하였는데 총 5대가 동원되었다. 날씨가 너무 포근하여 굳이 목욕까지 하지 않아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인데 모처럼 목욕까지 하고 오면 노인네들 표정이 어떨지 상상하니 흐뭇하다. 그리고 오늘 점심은 남해에서 싱싱한 회가 시외버스 편으로 배송되어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은 오늘 동원된 차량의 배차 내용이다. 1호차 새마을 지도자 트럭 (어르신 2분 동승), 2호차 이장님 트럭(할머니 2분 동승), 3호차 털보 트럭(어르신 2분 동승), 4호차 용만형님 트럭(할머니 2분 동승), 5호차 부녀회장 승용차(할머니 4분 동승) 마을에 승합차가 한대 있으면 좋으련만 동원 가능한 승용차도 한 대밖에 없으니 3인승 트럭이라도 있는 대로 모두 징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어쨌든 행사차량 1호차부터 5호차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동했다. 그리고 이웃 마을을 지날 때는 일부러 크락숀을 빵빵 울린다. 길 가에서 마주친 이웃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 가는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든다. 시골에서 소문의 속도는 빛과 같은 것이다. 차량행렬은 엄천강을 따라서-----고개를 넘어서~~~~~또 고개를 넘어서~~~~~읍으로 읍으로 달린다.(참고로 1호차 기사는 나다. 시골에는 마을마다 새마을 지도자가 있는데 얼마 전 마을 회의에서 내가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북한에 있는 뚱뚱하고 못생긴 지도자와 각자의 관할지역에서 권력서열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목욕탕에 도착하여 남녀 구분을 엄격히 하여 입장을 시키고, (당연한 얘기지만 당연한 얘기가 아니다.) 요금 계산을 하느라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어르신들이 조그만 신발장에 옷을 꾸겨 넣고 계신다. 옷장이 작아 좀 유감스럽다는 표정들이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여기는 신발만 넣는 곳이라고 알려드렸더니 어르신들이 유쾌하게 웃으신다. 덕분에 나도 배꼽잡고 웃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서 마을회관에서 싱싱한 회를 먹었다. 마을회관에서 회를 시켜먹기는 처음이라고 모두들 좋아하신다. 돈만 있으면 매일 먹고 싶은 맛이다.(돈이 없어서 매일 먹지 못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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