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임 없이 혼자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얼굴에 화색까지 돌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의 눈동자에는 지루함으로 습기가 가득한데도 혀 밑에 쌓인 말은 줄어들지 않았다. 당사자는 몰랐다. 얼마나 초라하고 허허롭게 보였는지를······. 본인의 입으로 하는 자랑은 자랑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기를 쓰며 말하는 듯 보였다. 나는 의례적인 부러움의 감탄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반복했다. 우리가 나눈 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대화라는 것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입에서 씹히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 부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알맹이 없는 껍질에 불과했다. 그러기에 혀 속에서 씹히는 맛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이런저런 일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며 즐거운 대화였다고 말했다. 지인 중에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 부부가 있다. 평생 얼굴을 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면 그분들에게 검지 끝을 보내고 싶다. 두 사람은 천생연분처럼 많이 닮았다. 자그마한 키에 얼굴에는 깨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기미가 가득했다. 못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사람을 다가가게 만드는 자석 같은 무엇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무언지 모를 은은한 멋이 흘러나왔다. 왠지 부러웠다. 무엇이 부러운지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듯 했다.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며 결코 당신들을 먼저 내세우지 않았다. 말을 하고 잠시 침묵하며 상대변의 말을 들어주었다. 말투에는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독특한 힘이 있었다. 귀가 저절로 활짝 열리고 주고받는 말들에 씹히는 맛이 좋았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마냥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구나가 그 부부를 찾고 함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부류에 드는 사람일까. 나는 삭정이 같은 사람이다. 체력도 허약하고 재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다. 성격 또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또 그리 나쁜 편도 아니다. 눈에 띄는 삶은 아니지만 그냥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어수룩한 사람일뿐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태울 수 없는 하잘 것 없는 삭정이에 불과하다. 큰 불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삭정이가 꼭 필요하다. 삭정이에 붙은 불씨가 또 다른 삭정이 옮겨 붙고, 또 다른 삭정이에 옮겨 붙고······. 그러다 보면 불씨는 커진다. 커진 불씨는 나뭇가지에게로 그리고 나무에게로 옮겨 간다. 그러니 큰 나무는 삭정이가 없으면 절대 불이 붙을 수 없는 법이다. 삭정이 같은 이웃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이웃은 어떤 모습일까. 흙속의 흙처럼, 먼지속의 먼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 자연을 사랑하며 꽃과 나무를 바라보며 소탈한 웃음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소박하고 겸허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같이 잘 안되는 게 세상 살아가는 모습이다. 돌이켜 보면 하잘 것 없는 삭정이인 나도 작은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 작은 가시는 가끔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난로 속을 바라봤다. 삭정이도 큰 나무도 한 덩어리였다. 모두가 붉은 불꽃 속에서 충분히 아름다웠다. 어쩌면 난로 속의 풍경처럼 세상사람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사랑하고 또 때로는 싸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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