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중심의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완성한 왕은 9대 성종이었다. 세조 때 편찬하기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하여 반포한 『경국대전』은 중앙과 지방의 행정조직은 물론 조세 토지 교육 과거 외교 군사 재판 등 다양한 제도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500년 조선왕조 정사의 기본 기준이 된 통치법전이었다. 우선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인 중앙정치의 조직을 살펴보면 이렇다. 왕 아래 영의정 등 3정승의 합의로 중요정책이 결정되는 최고통치기구인 의정부가 있다. 의정부 아래엔 행정 실무를 각 분야별로 나누어 보는 6조가 있는데 이조(인사) 호조(경제) 예조(외교 교육) 병조(국방) 형조(사법) 공조(건설)다. 책임자를 판서 또는 참판 대감 영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독립기관으로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삼사가 있다. 직급이나 월급은 적었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이라 청요직이라 하여 누구나 가고 싶은 부서였다. 국왕의 독주를 막는 견제 장치로서 조선 통치조직의 핵심이며 꽃이었다. 이 삼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말한다.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전하, 통촉하시옵소서!’하며 왕에게 감히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서류를 되돌릴 수 있는 서경과 간쟁과 봉박이라는 권한을 법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장원 급제한 유능한 젊은이가 배치되는 곳이었다. 또 사헌부는 고위 관리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를 감찰하는 기관이라 힘이 대단했다. 홍문관은 왕의 정책을 자문하고 검토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기관이었다. 그 외에 승정원은 청와대와 같은 왕의 비서기관이었으며 의금부는 나라의 큰 범죄를 다루는 기관이었고 한성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로 서울 행정을 담당하였다. 춘추관은 역사 및 서적편찬을 담당하였다. 지방행정으로는 전국을 8도로 나누었는데 지금의 경상도 전라도 하는 8도와 그 도를 다시 부 목 군 현으로 작게 나누었다. 예를 들면 경상도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 또는 경상도 대구시 동대문구 00동 식이다. 도에는 책임자 관찰사를 파견했고 부목군현은 원님 또는 사또라 부르는 수령을 중앙에서 파견했다. 이 수령은 농업 교육을 장려하고 호구조사, 조세 징수, 치안 및 재판과 군사 업무 등 입법 사법 행정의 실질적인 지방 대통령으로서 권력이 막강했다. 수령 아래에는 6방으로 아전 향리가 있어 수령의 업무를 보좌했다. 이 수령과 향리들의 권한을 감찰하기 위해서 지방 양반들의 자치 기구인 유향소 향청을 두어 수령의 자문과 의견수렴과 비리 고발 등 오늘날의 지방의회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군사조직은 중앙은 궁궐 수비와 한양 방어를 하는 5군과 지방은 각도에 병영과 수영을 설치하여 영진군으로 진관체제를 유지 했으나 시대에 따라 자주 바뀌었다. 교육은 유교를 양반자제에게 가르쳤는데 한양엔 4부 학당과 최고국립기관인 성균관(서울대학교)이 있었다. 지방엔 각 고을마다 1개의 향교가 있어 초중등교육을 담당했다. 관리가 되려면 과거시험을 보거나 양반 자제에게 주는 음서와 천거제도가 있었지만 실력인정이 안 돼 과거시험을 통해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문관을 뽑는 문과와 무관을 선발하는 무과가 있었고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가 있었다. 잡과는 통역하는 역과, 계산하는 율과, 병 치료하는 의과, 풍수지리를 맡는 음양과가 있어 주로 중인 하급관리들의 자제가 응시했다. 과거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식년시와 특별히 실시하는 부정기 별시가 있었다. 과거시험 응시자는 소과 초시 복시라고 하여 두 번 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생원, 진사의 자격을 주고 이 사람들이 다시 한양에서 실시하는 대과 과거시험을 치르게 된다. 초시에 통과된 대략 330명 정도의 진사들과 성균관 졸업반 학생들이 대과 시험을 치러 33명의 과거급제자를 뽑았다. 초시는 대략 100대 1쯤이고 복시는 10대1 쯤의 경쟁률이라고 생각되니 과거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가를 짐작할 수 있겠다. 과거에 합격한 33명은 왕 앞에서 면접을 보고 갑을병정으로 등급을 매기고 성적에 따라 관직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해서 1등 한 사람이 장원급제한 사람이다. 왕이 꽃어관인 어사화를 직접 씌어 주고 축하 선물과 휴가를 주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었다. 고향 가는 길목마다 그 지방의 수령과 백성들이 나와 환영의 물결과 잔치가 벌어진다. 영광의 길이다. 한번 합격하기도 어려운 과거시험을 율곡 이이는 500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아홉 번 장원급제의 기록을 세워 ‘구도장원공’이라 불리게 되었으니 그의 실력은 가히 놀랄 만하다. 성리학의 두 거두 중 한명 대가가 아닐 수 없다. 조선 전기의 대외정책은 처음에 요동정벌을 계획하였으나 태종 이후 사대교린 정책을 폈다. 사대라 함은 중국 명나라와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서 발달된 선진문물을 들여와 실리를 얻는 외교정책이다. 교린이라 함은 여진과 왜구에 대해 강경책 또는 회유책을 씀으로서 어르고 뺨치고 하면서 또한 실리를 얻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4군6진 설치나 대마도 정벌은 그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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