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호족→문벌귀족→무신→권문세족→신흥무인세력→신진사대부 순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조선은 개별적인 왕을 중심으로 업적과 그 때 일어난 대 내외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왕의 순서대로 왕 이름을 꼭 외워야 한다. 어느 왕 때 어느 사건이 일어나 어떻게 됐고 어떠한 영향을 끼쳐 어떻게 다음으로 전개됐다를 구슬처럼 꿰고 있어야 한다. 얼짱 문샘: 음악 선생님, 개나리 노래를 풍금으로 쳐주세요.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자, 학생들 이 노래에 맞춰 부르세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자, 한번 더- 다 외었으면 뒤에 조(祖)나 종(宗)을 넣어 보세요.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조선왕조 500년은 태조 이성계로 시작하여 27대 왕 순종으로 끝난다.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선 조선전기에 알아두어야 할 왕은 1대 태조 이성계, 3대 태종 이방원, 4대 세종대왕, 7대 세조 수양대군, 9대 성종, 10대 연산군, 14대 선조, 15대 광해군, 16대 인조 등이 있다. 오늘은 드디어 조선 7대 왕 수양대군 세조 이정재의 포스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세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수양은 어려서부터 공부는 저 푸른 초원이었지만 형인 문종보다 무예에 능하고 병서에 밝았다. 세종의 첫째 아들 문종은 재위 2년여 만에 병약해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신하를 불러 사후 어린 단종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때부터 수양은 왕위를 넘보는 야심에 불타기 시작했다. “이 자들 중 누가 역모를 꾸밀 상인지 알려 다오.” 문종이 천재 관상가 내경에게 물었다. “그래, 내 얼굴이 왕이 될 상이더냐?” 수양대군도 내경에게 물었다. 남의 약점인 목을 물고 뜯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 잔인무도한 이 자가 진정 역적의 상이다. 내경은 시체를 물어뜯고 피 흘리는 표범의 무리를 보았다. 관상가 내경은 말한다.“그렇습니다. 대군은 왕이 될 상입니다. 성군 중에 성군이 되실 상이 옵니다.” 그러나 역사는 수양대군을 성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1453년 10월 수양은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단종의 오른 팔 김종서를 죽이고 대신들이 궁궐에 들어오는 대로 좌우로 나누어 반대파 쪽은 죽이고 자기편은 살렸다. 그의 곁에는 재상 한명회와 신숙주 권람이 있었다. 살생부 명단에 따라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 집현전 학자들이 죽어 나갔다. 동생 안평대군까지 죽였다. 왕이었던 조카 단종을 영월로 유배 보냈다가 죽이고 마침내 왕위를 찬탈했다. 집현전 출신 유학자인 충신 사육신이 있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이 주도하여 단종 복위운동을 일으켰지만 죽음만이 돌아왔다. 박팽년과 성삼문을 수양대군 세조가 직접 고문하였다. “나으리, 나으리 나으리께서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도둑질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노옴! 신하가 왕이라고 부르지 못할까?” “네, 나으리. 나리 나리 개나리 님. 나는 당신의 녹을 받은 적이 없소이다. 당신의 신하가 아니에요. 내 창고에 가보시오. 당신이 준 월급 쌀 단 한 톨도 먹지 않고 그대로 쌓아 두었소이다. 하하하.” 성삼문은 수양의 녹봉을 먹지 않고 죽으면서도 세조를 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신 박팽년은 신(臣)의 획수를 빼어 거(巨) 박팽년으로 문서를 써서 올렸으니 학자의 충절은 실로 놀랍다. “저 놈들을 달군 인두로 살을 태워 죽여라!” 세조는 집현전을 아예 없애 버렸다. 태종과 비견될 만큼 피로 자리를 뺏고 피로 자리를 지켰다. 세종이 실시한 수평적 행정체제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수직적 행정체제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했다. 그는 속리산 법주사를 행차 할 때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왕이 지나가도록 예를 갖추었다고 하여 ‘저 소나무에게 정2품의 벼슬을 주도록 하여라.’하며 벼슬까지 주었다. 장관급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지금도 보은 길 한가운데에 있다. 세조가 폭군임에는 분명하나 잘한 것이 있다면 관리들에게 월급을 주는 과전법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과전을 폐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함으로서 국가경제를 튼튼히 했다는 것이다. 세조가 왕이 되어서 가장 잘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 왕조 500년의 기본 법전이 되는 『경국대전』과 역사서 『동국통감』 『동국지도』를 편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경국대전이야말로 실로 나라의 근간이 되는 6조의 법이었다. 지금도 이 육법전서를 잘 아느냐 못 아느냐에 따라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등 나라의 인재를 뽑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국대전은 7대 세조 때 편찬하여 예종을 거쳐 9대 성종 때 완성되어 반포하게 된다. 권력의 야심에 찼던 수양대군 세조의 포스. 〈관상〉 영화를 꼭 한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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