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꽃들은 다시 피고 다양한 모양과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피기 시작했다. 나뭇잎들이 빨리 자라고 녹색으로 변했고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풀들은 푸릇푸릇한 싹이 돋아났다. 동물들은 동면에서 깨어나고, 새들은 나무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들은 상림 공원에서 야외 활동과 소풍을 즐기고 있다. 농부들은 밭을 가는 일을 시작했다.
봄은 일 년 중에 모든 것을 가장 바쁘게 움직이게 한다. 시골에 살고 있는 농부들은 농사를 짓는 철이라 이때가 매우 바쁘다. 농부들은 밭과 논을 갈고 충분한 거름과 비료를 뿌리고 본격적으로 심을 준비를 한다. 밭과 논은 농사꾼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부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 한다. 우리 어머니처럼. 어머니는 일어나자마자 곧 바로 밭에서 일을 하고 나서 아침밥을 드신다. 더욱더 바빠진 어머니는 금요일만 되면 저희한테 전화를 하시고 주말에 밭일을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신다. 그래서 아무리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에도 어머니를 돕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은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의 밭에 가서 일을 도와준다. 항상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하지만 평생 농사만 지으신 우리 어머니는 허리가 좋지 않아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 나이가 있으셔서 꼬부랑 허리로 일을 했지만 누구보다 손놀림이 빠르시다. 그래도 아들과 손주들이 함께한 주말은 어머니의 작은 행복이다.
밭일을 하는 사이 어느덧 입춘이 지나가고 추위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고 봄나물들이 슬슬 올라온다. 움츠러든 몸의 기운이 활짝 펴는 시기라서 봄철이 오면 잃어버렸던 입맛을 돋워 줄 새롭고 산뜻한 음식을 찾게 되다. 그래서 그동안 겨울에 섭취하기 어려운 비타민, 미네랄, 섬유소 등 보충하기 위해. 이맘 때 쯤, 주말이면 온 가족이 출동해서 함께 산나물을 채취하러 간다. 가족들은 나물을 좋아해서 집 근처에 있는 산에 천천히 올라가 어머니랑 나란히 산나물을 살펴보고 뜯어나간다. 맛과 향이 뛰어나고 나무 그늘에서 자란 부드러운 취나물을 어머니가 재빨리 알아보고 꺾었다. 뜯는 동안 어머니는 잠깐 잠깐 쉬면서 산에 둘러싸여 있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그동안 고달팠던 몸과 마음을 풀고 힐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 나온 연한 고사리가 많이 있고 하나를 꺾고 보면 또 보인다. 하나 둘 보이는 대로 꺾는 게 재미있었다.
내 고향 필리핀에는 산 전체가 고사리인데 먹는 방법을 잘 몰라서 안 먹는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길가에서 봤다. 그래서 언니한테 “한국에는 이 식물을 먹는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가 “아 그랬구나, 지난번 한국 관광인들이 왔었는데 이 식물만 다 꺾어 갔어.”그래서 언니가 고사리 먹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산에서 내려가다 보면 논두렁에 흔히 볼 수 있는 쑥, 냉이 그리고 향긋한 두릅을 뜯어 집에서 깨끗이 손질해서 어머니 손을 거쳐 다양한 반찬으로 변신하여 밥상에 올라간다. 나물을 무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옆에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머니가 나물을 양념에 잘 버무린 뒤 적당한 참기름을 넣어 맛을 본 다음 차근차근 설명을 해서 가르쳐주셨다. 십년전 그 당시는 말을 못해서 눈치로만 배웠다. 그리고 두릅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쑥은 어머니가 쌀가루에 버무려서 가마솥에 쪄서 온 가족이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봄이 올 때 마다 바빴던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다섯 남매를 혼자 키우시느라 70이 넘었는데도 황소처럼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일을 하셨다. 재작년 겨울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늘 자식들 생각을 가장 먼저 해주시는 우리 어머니가 오늘도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