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익명의 섬>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친인척으로만 이뤄진 어느 산골 집성촌을 배경으로 동네 아낙들과 덜 떨어져 보이는 바보 ‘깨철’의 은밀한 관계를 다룬 것이다. 동네사람들과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유일한 남자인 깨철은 대부분의 아낙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일부러 모자라는 듯한 팔푼이 행세를 하며 비밀을 지켜주고 아낙들은 깨철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해소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마을 전체가 유리알처럼 투명하여 숨김없이 기명화(記名化)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익명의 섬’으로 떠돌고 있는 깨철의 존재가 팔푼이가 아닌 마을 아낙들의 삶에 일종의 위안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깨철은 마을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명화된 세상에서 분출하지 못하는 욕망의 유일한 배출구로 형상화되어 있다. 익명(匿名)이란 자신을 숨기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숨긴다는 면에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익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연말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거금을 쾌척한 익명의 기부자 등 많은 자선활동이 여러 이유로 익명으로 이뤄진다. 또한 범죄에 대한 증인 등 위협을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존재한다. 반면에 신분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모함하고 비방하는 비열한 행위를 하고 범죄사실을 숨기거나 도피하기 위해 익명을 이용하는 등 부정적 사례도 있다. 나쁜 일을 하고 나서 비난을 피하려고 익명이라는 덮개를 사용하는 셈이다. 인터넷 게시물밑에 남기는 댓글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익명성을 악용하여 악의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허위사실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댓글의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해 실명인증제를 시행하기도 한다. 인터넷 실명인증제를 실시한 2016.3.30부터 2016.4.12까지 14일간 함양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은 모두 8건이었다. 익명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던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2013. 4. 25일 제40대 임창호 군수 취임식에 전직 군수로서 참석한 후 익명의 근거 없는 비난과 비방이 있었다.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모욕적이고 악의적인 표현들이 난무했다. 우아한 척, 잘난 척, 도덕군자인 체 등 ‘척’과 ‘체’로 가장한 악플이었다. 하얀 세상에 검은 색의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거리를 배회하는 흑두건 유령의 정체가 궁금했다. 조사를 의뢰 하였다. 악플을 단 사람은 두 명으로 의외의 사람이었다. 모두 임창호와의 선거경쟁에서 패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가족이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질 수 없고 져서는 안 되는 경쟁자에 대한 패배의 억울함과 아쉬움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위해 축하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로에서 뺌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는 꼴이었다. 정성자 IP로는 ‘함양망신’등 네 개의 닉네임을 사용하여 수많은 악플을 달았다. 욕심은 입을 열고 눈과 귀를 멀게 하는가 보다. 익명의 공간이라 마음껏 욕설을 하고 즐겼다. 험담, 근거 없는 비방으로 헐뜯는 재미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듣기 민망하고 옮기기 거북한 글이었다. 들키지 않고 신분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인지 절제와 품격을 생각지 않은 민낯을 드러냈다. 가면을 벗은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이중인격자의 신분이 드러났을 때 보인 당황함과 궁색한 변명을 하는 측은한 모습은 악플 달 때의 미소 지었을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생각되었다. 익명자체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때론 익명이 필요한 경우가 분명히 있다. 중요한 것은 익명이냐 실명이냐가 아니라 그 내용과 주장이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설령 익명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는 익명이 배제되어야 한다. 명확한 근거를 갖는 주장, 설득력 있는 의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익명성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민주주의와 지역발전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필수 전제이다. 인터넷 공간이 살기(殺氣)보다 온기(溫氣)나 촌철살인의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비방보다 풍자나 해학을 느낄 수 있는 댓글을 만나는 익명의 공간으로 활용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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