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으로 이사를 오던 해 화목(火木)난로를 하나 샀다.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거실 한 귀퉁이에 놓고 보니 오래 전부터 그 자리의 주인인 양 품세가 자연스러웠다. 며칠 동안 나뭇가지를 주우려 마을 뒷산을 오르내렸다. 나무를 옮기다 산길에 미끄러져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고, 나뭇가지에 찔려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따뜻한 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좋아 힘 드는 줄을 몰랐다. 어떤 날은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나 난로에 불을 붙였다. 불씨가 잘 피어날 수 있도록 나무를 뒤적여주었다. 불구멍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밀어 넣으면 빨간 씨앗이 싹을 틔웠다. 그리고 발그레한 꽃이 되어 춤을 췄다. 너울너울 느리게 시작되었던 움직임이 힘을 얻으며 생기가 돌았다. 나무는 불꽃에 장단을 맞추었다. 타닥, 탁, 탁······, 또르륵 탁탁, 뿌직뿌직, 텅! 소리는 일정한 강약도, 음률도 없었다. 마치 먼지의 더께가 묻어있는 모습들이 오랜 고요를 털어내는 소리 같았다.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몸속에 숨어 있던 오래된 풍경들이 일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옛날 햇살 따사로운 겨울날이 생각났고 발갛게 익은 홍시가 생각났다.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아궁이 앞에서 소죽을 끓이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환영처럼 보였다. 깡깡 얼음이 얼은 저수지에서 달리던 썰매, 뜨거워 호호 불며 먹던 고구마와 감자, 숯 검댕이 손, 그리고 까만 얼굴의 어린 친구들······, 모두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더 오래된 풍경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굵은 소나무 둥치를 하나 집어넣었다. 나무는 난로 속의 열기를 받아들인 듯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소리가 조금 커지다가 조금씩 시들해졌다. 마침내 까만 침묵이 흘렀다. 얼른 안을 확인하니 생기가 돌던 불꽃이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들 자신을 감추고 납작하니 엎드려 있었다. 방금 전에 던져놓은 소나무가 시커멓게 옷을 바꿔 입고 떡하니 가운데를 차지했다. 처음에 껍질을 내어주며 화음에 장단을 맞추던 나무였다. 어느덧 겉모습을 바꾸고 자신의 냉기를 품어내며 주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종이와 삭정이들을 넣고 공기구멍을 움직여 줬다. 불꽃이 조금씩 팔랑거렸다. 난로 속의 합창단이 마음을 맞추고 다시 음률을 조율했다. 아웅다웅 작은 존재들의 속삭임이 들렸다. 납작했던 불꽃이 다시 몸을 곧게 세웠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을 더 넣는다. 불꽃이 점점 거세어졌다. 시커먼 소나무도 시나브로 자신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불꽃들은 함께 어울려야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합창하는 듯했다. 제 아무리 크고 화려하게 타오를 수 있는 존재도 작은 존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새로 만들어진 전원마을이다. 모두들 낮선 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들어야 했다. 서로 친해지려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언젠가 이웃마을에 산다는 부부가 우리 집 대문을 들어선 적이 있다. 새로 생긴 마을이 궁금하여 구경을 온 사람이었다. 시골인심이란 모르는 사람도 따스하게 맞는다 싶어 그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아주머니는 본인의 출신대학교를 인사말처럼 건넸다. 곧이어 대화는 주택이 몇 평이라는 등, 전기세가 백만 원을 넘는다는 등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오는 말이 다 귀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말들이 허공에서 저절로 흘러갔다. 첫 만남에서 그런 말들이 왜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이 자신들을 빛내 주리라 믿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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