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거실에 누워 드라마를 보던 아내 비명소리에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책을 보던 나는 “왜 그래~ 또 왜 그래~”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닌지라 내심 놀라거나 걱정은 안했지만 얼른 책을 덮고 아내 주변을 살폈다. 남자는 이럴 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 눈에도 보였다. 만약 이럴 때 동작이 느리면 나중에 아내로부터 구박을 받을 수 있다.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다.
나는 개미가 출현했던지 아님 다리 많은 징그러운 벌레가 나타났나보다 싶어 살펴보니, 아이쿠야~ 거짓말 좀 보태서 뱀 만한 지네가 아내 목덜미 옆을 기어가고 있었다. 내가 여태 본 지네 중 가장 큰 놈이었다. 며칠 전에도 벽난로 벽을 가로지르던 통통한 지네를 발견하고 조용히 아내 모르게 처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대물이 나타난 것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들고 있던 두꺼운 연애 소설 <오만과 편견>으로 내리쳐 책쿵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가슴이 콩닥콩닥한 아내는 다시는 마음 편히 거실에 누워있지 못하겠다고 한다.
사실 놀라기는 지네가 더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큰 비명소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들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운이 나빴던 그 지네는 단지 길을 잘못 들어 사람이 사는 집안으로 들어왔을 뿐이고 사람을 놀래킬 의도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다리가 좀 많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고함소리와 함께 책쿵사망사고를 당했는데, 공정하게 따져보면 전적으로 인간의 편견에 의한 희생양인 것이다.
산골짝에 지은 집에는 벌레가 수시로 들어오게 마련이다. 개미, 노린재, 흔히 돈벌레라고 불리는 그리마 등등 심지어는 쥐도 집안에 들어온다. 몇 년 전에는 쥐가 거실에 들어오는 바람에 밤새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세상에서 쥐를 제일 무서워하는 나는 혼자 쥐잡기가 무서워 마당에 있는 개까지 불러들여 쥐잡기 쇼를 한 적이 있다. 공연시간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그런 공연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개미는 그다지 징그럽지는 않지만 개미가 보이면 수시로 개미트랩을 놓아 퇴치한다. 노린재는 곤충계의 스컹크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조심조심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산채로 내보내 드린다. 그리고 송충이처럼 생긴 그리마는 사실 사람을 물지도 않고 해충의 알을 먹고사는 익충인데 다리가 많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혐오곤충으로 분류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한번은 거실에서 아들 방으로 들어가는 지네를 목격하고 바로 추격한 적이 있다. 문 아래 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잡으려고 따라 들어갔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의 꼬리를 물고 추격했기 때문에 지네가 책상이나 책장 또는 침대 뒤로 몸을 숨길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하고 찾다가 찾다가 포기했다. 아들은 언제 불쑥 나타날지 모르는 지네가 무서워 한동안 거실에서 잤는데 며칠 뒤 우연히 문 경첩에 끼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따라 들어가며 문을 열 때 운 나쁘게 문 경첩으로 피하다가 압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벌레들은 어쩌다가 가끔 실수로 들어오는 것이기에 그냥 크고 작은 소동으로 끝나지만, 여름 내내 그리고 늦가을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파리와 모기는 정말 싫다. 파리는 성가시고 모기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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