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남편의 생일이 지나갔고 곧 내 생일이 돌아온다. 남편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나를 위한 미역국을 끓일 것이다.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여야 뭔가 평소에 하지 못한 남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남편의 생일에도 나의 생일에도 끓여 먹었던 미역국은 가족의 생일에 차리는 많은 음식들 중 빠져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면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인덕이 있어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지만 평소에도 나는 미역국을 열심히 끓여 먹는다. 미역의 씹히는 식감도 좋고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비릿한 향도 좋기 때문이다. 어려서 살기 어려운 탓에 일상적으로 먹지 못하는 소고기가 내는 국물의 맛을 탐닉하던 습관이 굳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시댁의 집안 어른 중에는 전복을 양식하는 분이 계시는데 가끔 집으로 살아있는 전복을 보내주신다. 그때마다 늘 바다에서 바로 채취한 미역 위에 살아있는 전복을 얹어 보내주시는데 그 이유가 전복은 다른 먹이는 먹지 않고 오로지 신선한 미역만을 먹으면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고급 음식의 재료로 생각하고 몸을 보하기 위해서 먹는 전복의 유일한 먹이가 미역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미역이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데 좋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덕이라는 것이 자기하기 나름일 것이므로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지 않는다고 인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먹는 행위는 그만 두고 싶지가 않다. 나를 낳고 미역국을 드셨을 어머니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그나마도 안 해 먹으면 인생이 너무 쓸쓸할 것이라 계속해서 미역국은 끓이게 될 거고 남편의 미역국도 당분간은 계속 받아먹을 생각이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미역국을 끓여 주시고 수수팥떡을 해주셨다. 미역국은 인덕(人德)이 있으라고 끓여주는 것이고 수수팥떡은 나쁜 귀신이 나를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것이라며 꼭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동지가 되면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면서 역질귀신을 쫓고자 했던 것처럼 수수와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 어머니의 신앙과도 같은 자식 사랑의 표현이 생일날 해주셨던 수수팥떡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열세 살을 무사히 넘기고 더 자라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에 친정어머니가 오셨다. 나는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구워 상을 차렸지만 어머니는 붉은 수수팥떡과 잡채를 해오셨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편의 생일에 수수팥떡을 해주기 어려우면 수수밥이라도 해주라고 당부하셨다. 그래야 남편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는 것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돌이 되었을 때도 어머니는 또 수수팥떡을 해오셨다. 그리고 딸아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수수팥떡을 해주라고 당부하셨다. 그 이후에는 떡을 하기 어려우면 수수밥으로 대신 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야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이었다. 곧 내 생일이 돌아온다. 그날도 나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수수밥을 해먹을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남은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수수밥에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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