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이 일주일째 감나무 전정 작업하고 있다. 혼자 높은 사다리에 올라서서 톱을 들고 똥마련 폼으로 끙끙대는데 정말 가관이다. 사다리 위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톱질을 할 때마다 이빨을 꽉 깨문다. 톱이 오락가락 하지만 이빨로 자르는 것처럼 용을 쓴다. 찡그린 얼굴로 이빨을 깨문 채 아래턱이 왔다갔다하며 나무를 썰어대는데 완전 웃긴다. 작년에 제대로 전지를 해줬으면 올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이게 다 자업자득이다. 근데 저래 잘라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겁나게 가지를 쳐낸다. 어떤 나무는 잘라낸 길이가 남아있는 길이보다 길다. 하지만 반토막을 내던 세토막을 내던 나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보고만 있자니 측은해서 나도 거들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내가 좀 심심해서이기도 하다. 근데 사다리 위에서 벌벌 떨면서도 자존심은 있는지 됐다하고 한마디로 거절하고는, 심지어 성가시게 굴지 말라는 심한말까지 해서 완전 개존심 상했다. 나처럼 혈통이 있는 개가 결코 받아서는 안될 모욕을 당했지만 어쩌겠는가? 개가 참아야지ㅠㅜ윗밭에서 친절하신 홍영감님이 할머니랑 같이 지켜보고 있다가 ‘결국 잘라내네~ 안되겠덩가베~’하고는 씨익 웃는다. 작년 봄 이맘때 홍영감님이 ‘어이~ 유주사~ 감나무 전지해야지~’ 하고 조언을 해줬는데, 주인님은 ‘네~ 해야지요~’하고 대답하더니 대답이 끝이었다. 우리 주인님은 말하자면 뭐든 말로 다하는 능력자인데, 지켜보는 이웃이 답답해서 ‘감나무 밭에 거름 줘야지~ 방제 해야지~ 풀 베야지~’하고 얘기해주면 ‘네~ 해야지요~’하고 대답은 시원시원하게 한다. 하지만 그 대답이 전부다. 그렇다고 뭐 우리 주인님이 일을 전혀 안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가 거름도 나르고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넝쿨도 걷어준다. 그리고 어떤 때는 풀도 베어주는데 자기 밭이 아니고 남의 밭이라고 생각하는지 대충대충 해서 내가 보기엔 하나마나다. 말이 제초지 내용은 순지르기 수준이어서 돌아서면 풀은 세력이 더 왕성해진다. 결국 풀을 재배하는 꼴이다.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긴데 우리 주인님은 엄천골 관심농부다.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고 입으로만 농사를 지으니 수확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작년엔 곶감용 감 150박스 수확했다고 자랑하는데 내가 다 웃을 노릇이다. 내가 보기에 절반은 뻥이다. 달리긴 많이 달렸는데 전정작업을 제대로 안 해서 감인지 탱자인지 구분이 안되는 것들이 더 많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뻥은 늘어가고 수확은 제자리걸음이라 내가 개걱정이다. 사실 이정도 일은 개가 보기에도 사흘이면 끝나는 일이다. 근데 우리 주인님은 일주일째 하고 있고 그나마 아직 반도 못했다. 자칭 지리산농부 우리 주인님에게는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일을 하면서 수시로 셈을 한다. 겨우 다섯 그루 전정을 해놓고 몇 그루 남았지? 하고 세어본다. 또 세 그루 더 작업해놓고 한숨을 푹푹 쉬며 이제 몇 그루 남았나? 하고 다시 세어보는데 이거 일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한심하다. 이왕 흉보는 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려고 하지 말입니다. 근데 이건 쫌 정말 완전 심한 거라 여기서는 곤란하고 내 SNS에 올려 놓을테니, 카스에서 ‘지리산농부’ 검색해서 읽어보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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