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손님인 춘곤증에 시달린다. 밖은 새싹을 비롯해 만물이 생동하는데 나는 아직 겨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나른하고 힘들다. 어쩌면 겨울 동안 너무 많은 활동을 한 것이 이 봄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엔 좀 쉬면서 몸을 다스렸어야 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이런 땐 힘들다고 계속 늘어져 있으면 점점 더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어깨가 무겁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친구도 부르고 하여 맛있는 거 해먹으면서 수다를 떨면 좋다. 겨울을 보내고 파릇한 기운 넘치는 봄동 몇 포기에 푸석해지면서 아삭한 맛이 떨어지는 사과 하나면 다 된다. 마당 꽃밭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달래 몇 뿌리로 파와 마늘을 대신해 버무리면 봄도 같이 버무려진다. 아삭한 봄동으로 푸른 봄이 씹히고 푸석한 사과지만 봄이 감미롭게 느껴진다. 바로 해서 따끈한 밥 한 공기만 있으면 부러운 것 없는 최고의 밥상이 된다. 봄동을 무치고 나니 따뜻한 밥이 한 공기 필요하다. 밥을 하려면 쌀을 씻어야 한다. 쌀을 씻으면 뽀얀 쌀물이 나오는데 그걸 우리는 쌀뜨물이라 부른다. 첫물은 버리고 세 번째쯤 물을 따로 받아 국을 끓이거나 찌개를 끓일 때 쓰면 국물이 구수하니 좋다.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잡 내를 없애주는 역할도 하므로 요긴하다. 쌀뜨물을 받아 두고 쌀을 불린다. 30분쯤 걸릴 것이니 그 사이 된장찌개 끓여 상에 올리면 딴 반찬 필요치 않다. 바지락조개를 물속에서 손으로 바락바락 주무르면 바지락 바지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일 게 분명하다. 냄비에 바지락을 한 줌 물과 함께 넣고 불에 올리면 이놈들이 입을 벌리면서 맛난 물을 내놓는다. 그 물을 받아 국을 끓이거나 찌개를 끓이면 바지락조개 하나가 육수로 충분함을 알 수 있다. 뚝배기면 더 좋겠다. 쌀뜨물과 함께 바지락에서 나온 물을 함께 넣고 두부랑 양파랑 이런 저런 재료들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마지막에 냉이와 달래를 수북이 얹고 건져두었던 바지락도 함께 올리고 상에 내놓는다. 상에서도 뚝배기의 된장찌개는 봄과 함께 보글보글 끓는다. 그 소리에 침이 꿀꺽 넘어가고 봄도 같이 목으로 넘어간다. 이런 나른한 봄날 밥상을 좀 더 멋지게 차려 한껏 멋이라도 부리고 싶다면, 아니 추운 겨울 보내고 찾아온 봄을 느끼고 싶어 가까이 사는 친구라도 부를라 치면 된장찌개 끓일 바지락과 냉이만 있으면 된다. 찌개로 끓이지 말고 밥을 지으면 훌륭하다. 바지락에 살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봄이기 때문이다. 냉이의 푸른 봄 향이 나를 몸살 나게 하는 봄이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바구니 하나 들고 들로 나가고 싶은 봄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아 들판에 앉아 냉이를 캐다가는 주인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어 장으로 나간다. 지리산 산골이라 재료 수급이 편치는 않지만 그나마 이런 오일장이 있어 참 다행이다. 냉이와 바지락을 한 바가지 사와 밥을 해 솥 채로 상에 올리니 모양새가 더 나는 것 같다. 달래 송송 썰어 넣고 만든 간장으로 비벼 한 숟가락 먹으니 입안에서 봄이 논다. 봄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밥상에서 찾는 것이다. 배불리 먹고 나앉아 매화차 한 잔 앞에 놓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저녁이다. 전순의가 아니라도 산가요록 한 권 쓰고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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