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스한 봄날 이제 11개월 된 딸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갑니다. 제법 걸어가는 아장 걸음이 신이 난 딸아이만큼이나 저도 봄 내음 맡으며 걸어가는 걸음이 가뿐하네요. 파릇한 봄풀이 돋아나고 쑥이 새순을 고개 내미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 아이를 보는 것 같아요. 아이 손잡고 걷다보니 어느새 엄천강 맑은 물 흐르는 한남다리 위까지 왔네요. 강 아래는 겨우내 어디메서 웅크리고 있었던 피라미 물고기들이 반짝이는 물빛사이로 떼를 지어 노닐고 있고, 저 멀리 수평선 끝 운서 보 위에는 아지랑이가 가물거리고 있습니다. 아지랑이 울렁이는 모습 보며 달큰한 봄바람에 잠시 고향 생각을 해 봅니다.
한국으로 시집오기 전 이렇게 따스한 봄날. 소 몇 마리와 한 무리의 염소를 이끌고서 꽃과 풀이 만발한 언덕 위 전망 좋은 곳에서 소와 염소는 풀을 뜯고, 저~ 멀리 아지랑이에 취해 혼자 소녀의 꿈을 꾸던 그 순간들이 생각나네요. 소녀의 꿈이 지금의 한국삶이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아지랑이만큼이나 미지에 대한 하늘거리는 꿈이었는데...
한국에서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한국말을 한국사람 보다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한국음식을 한국사람처럼 하게 된 지금.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 멀리 산악지대 높은 언덕 위 넓은 초원이 있는, 소와 염소가 풀을 먹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 넋 놓고 사색에 잠겨 추억 여행을 다녀와 봅니다.
이미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맑고 순수한 그때가 생각나고 한국살이의 바쁜 일상 속에서 이렇게 따스한 봄날이면 특히 아지랑이 피는 봄날이면 더욱 더 생각나네요. 이토록 그리운 고향 네팔이지만 살아가는 삶은 한국과 비교하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여러모로 힘든 게 사실인거 같아요.
한국에 오기 전엔 몰랐던 풍요로움도, 넉넉한 인심도, 막상 한국살이를 할수록 고향에 대한 이미지는 위축되고 말더라고요. 벌써 수회 다녀온 고향인데 자본주의에 대한 습관이 든 것일까요? 다녀올 때마다 이젠 한국인이 된 자신을 발견하는 씁쓸한 심정이랍니다.
함양 땅에만 여러 국적의 300가정 내외의 결혼 이주여성분이 계시고, 자녀수만 450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힘든 시작이지만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나아가 고향을 이롭게 하는 역할을 조금씩이나마 하여 줄 우리의 친구들. 외롭고 힘들 때도 있고 고향이 그리워 혼자 눈물 흘릴 때도 있을 우리의 친구들. 때로는 문화적 이질감이 눈물 나게 하고, 사회의 이방인 취급하는 시선이 서럽게 하고,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거나 실수를 하면 한국인과 차별된 시선으로 한 묶음으로 낮춰서 보는 경향의 모습들이 서운하지만 이것도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열심히 힘내어서 살아가려합니다.
우리 친구들 파이팅하세요. 그리고 함양군민여러분 저희들 잘 적응하도록 더욱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네팔댁 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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