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씹어서 / 공순히 먹거라 /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 그 여러 날들을 / 비바람 땡볕으로 / 익어온 쌀인데 / 그렇게 허겁허겁 / 삼켜버리면 / 어느 틈에 /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나 / 사람이 고마운 줄 모르면 /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 ...... 후략(이현주, ‘밥’ 중에서)  @IMG2@밥은 한국 음식의 처음이자 끝이며 중심이다. 아무리 훌륭한 식재료와 만나도 콩밥·잡채밥·순대국밥·비빔밥 등과 같이 그 끝은 언제나 밥으로 귀결되며, 제 아무리 잘 차려진 상을 받아도 그 상은 그저 밥상일 뿐이다. 맛은 있지만 빼어나지 않고, 향이 있지만 결코 두드러지지 않는 밥은 상 위에 올라온 맵고 짜고 시고 달고 향기로운 모든 반찬들을 아우르고 순화시키며 조화롭게 하는 힘을 가졌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오랜 시간을 계속해서 먹어도 결코 물리지 않으니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밥 먹자’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밥이 보약이라고들 한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조상들이 따로 보약을 해먹을 수 없으니 스스로를 위로하며 밥이라도 배부르게 먹고자 하는 마음에서 해온 말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쌀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효능을 생각하면 쌀로 지은 밥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보약임에 틀림없다. 자연에서 온 음식의 재료들은 사계절로부터 받은 고유의 성질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기운으로서 겨울의 찬 성질(寒), 봄의 따뜻함(溫), 여름의 뜨거움(熱), 가을의 서늘함(凉)으로 나뉜다. 또한 우리는 음식 재료를 앞의 네 가지 성질 외에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 등의 다섯 가지 맛으로 분류한다. 서양에서는 매운 맛을 맛이 아닌 자극으로 분류하지만, 우리는 다섯 가지 맛을 혀로 느끼는 단순한 맛 뿐 아니라 오장육부와 관련하여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인체 현상으로 생각해 왔다. 쌀은 봄부터 가을까지의 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아주 평화로운 성질(平性)을 지니면서 땅의 온전한 맛인 단맛(甘味)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쌀은 그 평화로운 성질과 단맛으로 비위를 튼튼히 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입이 마르는 증상, 구토와 설사, 병 후 허약함, 소화불량, 식욕부진, 영아가 젖을 토할 때 등의 다양한 증세에 여러 형태의 밥이나 죽으로 활용되어 왔다.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조차도 달고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몸의 열을 내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나는 증세에 효과가 있다.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께서는 배탈이 나면 부추죽을 끓여 먹여주시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자주 해주셨고, 겨울에는 찹쌀과 검정콩, 수수를 조금씩 넣은 잡곡밥을 먹게 해주셨다. 절기에 맞춰 콩죽이나 녹두죽도 쑤어 주시고 여러 가지의 떡도 해주시던 그 지혜는 쌀과 함께 조리하던 잡곡들의 차고 더운 성질을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온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體得)하여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친화적인 삶은 지식을 넘어서서 자신은 물론 후손을 건강하게 지키는 슬기로움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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