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날은 주말이었습니다. 늦은 밤에 마당에서 본 달은 정말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사위어 실바람에 사라질 것 같은 그믐달이었지요. 아내와 나는 거실에서 늦게까지 책을 보고 있었고 중간고사를 막 끝낸 두 아들은 홀가분한 기분에 하루 책을 덮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자정이 막 지나 눈이 슬슬 감기려고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이층 아이들 침실에서 뭔가 퍽 하며 떡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와 나의 놀란 눈길이 마주쳤고 그 눈길은 서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잘 시간에 침실에서 떡을 치는 소리라? 중1 중3 형제, 평소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툼, 형은 동생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동생도 형을 별로 존경하는 것 같지 않음,’ 저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릴까? 하고 궁금해 하고 있는데, 아내가 두 아이를 불러 내립니다. “느거들 이게 무슨 소리얏! 이리 내려와 봐!” 고개를 푹 숙인 두 아들이 이층 침실에서 슬금슬금 내려오는데 액정화면이 망가진 전자수첩을 내놓습니다. 작은 아이의 전자수첩이 벽으로 날아갔다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습니다. 사소한 말다툼에서부터 그렇게 벼르고 별러 구입한 전자사전이 날기까지 아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여기 다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사내아이 둘 키우는 부모라면 아마 짐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내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 엄마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인내력을 발휘했습니다. “느거들 오늘 아빠한테 혼 좀 나야겠다.” 나는 특별한 방법의 지도가 필요함을 깨닫고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고 그믐이라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염려는 되었지만 아이들을 구시락재를 넘어 강둑길로 돌아오는 길로 돌렸습니다. 래시를 데리고 잠시 후 내가 뒤따라 붙으며 소리쳤습니다. “뛰어! 더 빨리! 다섯 바퀴야! 아빠보다 늦으면 계속 추가되는 거야.” 칠흑 같은 어둠이라 발걸음을 내딛기도 힘든데 그나마 앞서가는 래시가 흰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도움을 줍니다. 아이들은 다섯 바퀴 이상은 돌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앞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두 바퀴 째 오르막길에서 아이들을 한번 따라 잡을 때만 해도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아빠가 땀 좀 흘리는 것도 괜찮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뒤처진 채 혼자 헐떡거리며 세 바퀴째 돌고나니 가쁜 가슴이 비명을 지릅니다. ‘숨이 차 죽겄네... 근데 이 자슥들은 다리에 엔진을 달았나? 보이지도 않네...’ ‘혹시? 이 자슥들이 안 뛰고 어디 숨어 있는 거 아닌가?’ 힘이 드니 쓸데없는 의심까지 드는 겁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찔레인지 아카시아인지 향이 가득 차 있었고 뛰는 열기가 봄밤의 공기를 데워 후끈후끈했었습니다. 아이들이랑은 한 바퀴 정도 차이가 난 것 같은데 샤워를 하고 나니 새벽 세시. 아이들 어깨 한번 두드려주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붙이는데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의 둥지에 있는 자식들 가르치느라 밤새 우는 뻐꾸기가 나와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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